[김정남 암살]
말레이 경찰, 北용의자 4명 숙소 뒤져… VX 현지 제조 가능성

감식반 이어 독극물 처리반 투입… 현지매체 "다수의 장갑 등 확보"
경찰 "발견 물질 말할 수 없으나 달아난 北용의자들과 관련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인 올드 클랑 로드에 있는 24층짜리 고급 아파트 ‘버브 스위츠’의 모습. /최규민 특파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인 올드 클랑 로드에 있는 24층짜리 고급 아파트 ‘버브 스위츠’의 모습. /최규민 특파원

26일 오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인 올드 클랑 로드에 24층 높이의 두 동짜리 신축 콘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김정남을 암살한 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평양으로 도주한 북한 국적 용의자 리지현(33)·홍송학(34)·오종길(55)·리재남(57) 등 4명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현지 매체인 동방일보가 보도한 곳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23일 이곳을 압수 수색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들이 머물렀고 화학물질까지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주민과 직원들은 외부인의 접근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경비원은 "이곳엔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으며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동방일보가 인터넷에 게재한 당시 압수 수색 동영상에 따르면, 아파트 앞에는 경찰 감식반 차량 여러 대가 먼저 왔고, 쿠알라룸푸르 소방서 소속 독극물 처리반 요원들이 탄 소방차도 도착했다.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나온 요원들의 손에는 종이 상자와 비닐 봉지, 신발 한 켤레 등이 들려 있었다. 현지 영문 매체 더 스타는 "경찰이 현장 수사를 극비로 하느라 독극물 처리반에게 훈련이라고 통보한 뒤 급하게 불렀다"며 "아파트에서 다수의 장갑과 신발, 수건, 주사기 등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독극물 VX가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거한 물품들을 조사 중이다. 이 물품에서 화학물질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압둘 사마 맛 슬랑오르주 경찰청장은 "아파트에서 발견한 물질이 무엇인지는 발표할 수 없으나 북한으로 달아난 네 명의 북한 국적 용의자와 관련이 있다"며 "VX가 해외에서 밀반입됐는지, 아니면 국내에서 제조됐는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VX 묻었나’ 조사 - 26일 새벽 말레이시아 경찰 감식팀이 김정남 암살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출국장 무인 발권기 주변에서 암살에 사용된 VX가 남아 있는지 점검하면서 제독 작업을 하고 있다. 현지 경찰은 “한 시간쯤 공항을 점검했는데, 위험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쿠알라룸푸르 공항 ‘VX 묻었나’ 조사 - 26일 새벽 말레이시아 경찰 감식팀이 김정남 암살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출국장 무인 발권기 주변에서 암살에 사용된 VX가 남아 있는지 점검하면서 제독 작업을 하고 있다. 현지 경찰은 “한 시간쯤 공항을 점검했는데, 위험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용의자들이 살았던 버브 스위츠는 주로 외국인이나 중국계 말레이인이 거주하는 고급 레지던스 아파트(가구를 갖춘 단기 임대 아파트)이다. 수영장과 사우나, 요가실, 영화관 등을 갖췄고, 입주민이 아니면 출입이 안 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월세는 한화 80만~90만원(방 두 개 기준) 정도로 비싼 편이다. 이미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 용의자 리정철(47)의 집에서는 차로 약 20분 거리(15㎞)다. 북한 대사관에서는 차량으로 20분, 쿠알라룸푸르 공항과는 4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도주한 4명의 북한 국적 용의자들은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순에 걸쳐 입국한 뒤 이곳을 작전본부로 삼고 암살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을 살해하는 데 맹독성 물질 VX가 사용됐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쿠알라룸푸르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 감식팀과 원자력청, 소방 당국은 이날 오전 1시 45분부터 1시간 동안 김정남 피습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 출국장 무인발권기 주변, 공항정보센터와 공항치료소 등을 긴급 점검하고, 제독 작업을 했다. 압둘 사마 맛 슬랑오르주 경찰청장은 "위험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며 "국제공항 2청사는 어떤 형태의 오염도 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북한 대사관에 은신하고 있는 현광성 2등 서기관 등 2명의 용의자에 대해 체포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현광성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출석 통지서를 발송할 것"이라며 "그래도 나타나지 않을 때는 법원에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김정남 암살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를 면담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25일 "아이샤는 TV쇼를 위한 장난으로 믿었으며 (VX를) 베이비 오일인 줄 알았다"면서 "그 대가로 400링깃(약 10만원)을 받았다"고 밝 혔다. 또 아이샤에게 이 일을 제안한 인물은 '제임스' 또는 '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추적 중인 북한 국적의 리지우(30)라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외교부도 이날 도안 티 흐엉이 자국민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흐엉은 구토 등 VX 중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지금은 건강이 안정적인 상태라고 베트남 당국은 밝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7/20170227002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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