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열흘만에 공식입장 내놔… 北정권이 배후로 지목되자 궤변
"말레이가 표적수사" 막말 쏟아낸 北… 위기 모면하려 단교까지 각오한 듯
 

북한이 김정남 암살 사건 발생 열흘 만인 23일 첫 공식 대응을 통해 "이번 사건은 남조선 당국의 대본에 따른 음모 책동"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가장 큰 책임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있다"며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를 "허점과 모순투성이" "천만부당하며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위"라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 주장이자 궤변"이라며 "북한은 말레이시아와 단교(斷交)를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담화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말레이시아 측의 비우호적 태도를 단죄'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현지 대사관 차원의 소극적 대응에 의존하던 북한은 전날 말레이시아 경찰이 사실상 김정은 정권을 이번 암살극의 배후로 지목하는 등 코너에 몰리자 강공으로 돌아섰다.

또 한국에 책임을 넘기면서 사건을 영구적인 미제로 몰아가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정치·외교적인 문제들을 법적 논리로 공격·방어하는 비상설 기구인 '조선법률가위원회'를 앞세운 것은 관련 사건의 법적 대응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라는 얘기다. 정부 소식통은 "국제법적 조항을 들이대 법적 다툼을 벌이며 시간을 최대한 끌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북한의 담화는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표현들로 가득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에 대해 "객관성·공정성이 없다" "누구(남조선)의 조종에 따라 수사 방향을 정한다"며 "표적 수사에만 열을 올린다"고 했다. 시신 부검에 대해서도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국제법을 무시하고 강행했다"며 "공화국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인륜·도덕에도 어긋나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했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도를 넘는 상식 이하의 내정간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쏙 뺐다. 사건에 연루된 북한 국적자가 8명에 이르고 이 중 4명이 공항에서 범행을 지켜보다 CCTV에 포착된 것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다. 이들이 김정남 사망 직후 동시에 출국해 자카르타~두바이~블라디보스토크~평양으로 이어지는 1만7000km의 수상한 도피 행각을 벌인 것에도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혐의를 받지 않고 왜 우리 공민들만 혐의 대상으로 되는가"라고 따졌다. 또 김정남의 사인(死因)을 '심장 쇼크'라고 주장하면서도 "남조선 당국이 전부터 예견하고 대본까지 짜놓고 있었다"고 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도 여럿이다.

담화에는 '김정남' 또는 여권상 이름인 '김철'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공화국 공민'이란 표현만 나온다. 담화 자체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소개됐고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등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고위 탈북자 A씨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적통(嫡統)이란 세뇌 교육을 받았다"며 "김정남의 존재를 알게 되면 김씨 왕조와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담화 말미에는 강철 주(駐)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지난 20일 언급한 '공동 수사'가 다시 언급됐다. 정부 당국자는 "유력 용의자가 수사를 하겠다는 궤변"이라며 "수사 물타기와 남남(南南) 갈등을 노리고 '법률가 대표단'을 실제 파견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4/2017022400224.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