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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혁] '북핵 동결'이라는 虛像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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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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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민혁 정치부 차장

북핵 협상이 한창이던 2007년 북한 협상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황소를 거세(去勢)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써 화제가 됐다. '핵 시설 불능화'라는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비유였는데, 쉽게 말해 시설 자체는 그대로 두면서 핵심 부품을 제거해 사실상 못 쓰게 한다는 얘기다. 불능화의 전 단계인 '동결(또는 폐쇄)'은 시설 전원을 끊고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감시 요원을 배치하는 수준의 조치다. 김계관의 비유를 확장하면 '동결'은 '황소에게 피임 기구를 씌우는 것' 정도가 될까. 당장 사용은 제한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재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능화'와 차이가 난다.

북핵 문제에서 한동안 뜸했던 '동결'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새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동결을 위한 협상에 나서라"는 주문이 한·미 일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일 사설에서 "트럼프에게 시간이 없다.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것은 북한의 핵연료 생산과 미사일·핵실험 동결"이라고 했다. 국제사회가 '대화를 위한 대화'를 거부해온 지난 몇 년간 북한의 핵 능력은 빠르게 고도화됐다. 이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 일단 핵 시설 가동을 멈춰 시간을 벌자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 /그래픽=김성규 기자

하지만 북핵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결 약속'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동결' 카드로 보상을 얻어내고, 일정 시간 후 다시 가동하는 '먹튀'를 반복해왔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7년 2·13 합의 때 북한은 동결 또는 폐쇄 대가로 중유(重油)를 수십만t씩 챙겼다. 2012년에도 북한은 핵 활동 중단 대가로 미국에서 식량 지원을 약속받았으나 보름 만에 합의를 파기했다.

이처럼 동결 카드의 무한 재활용이 가능했던 것은 먹튀에 대한 합당한 '응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잠시 흥분하다 결국 다시 대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대북 제재 강도를 높인 것이 응징에 가깝다. 하지만 만약 북한과 다시 동결을 위한 협상을 한다면 일정 수준의 '제재 해제'를 대가로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힘겹게 쌓아올린 제재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게다가 영변 외에 한·미가 파악하지 못한 우라늄 농축 시설의 동결을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대화·협상은 필요하면 해야 한다. 다만 북한이 알아서 핵 포기를 할 가능성이 0%인 만큼 협상에서 성과를 기 대하려면 먼저 지속적 고강도 제재·압박으로 저들을 절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북한이 보상만 챙기고 다시 뒤로 빠지려고 할 때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을 그어놓고, 이를 넘었을 때 국제사회가 가할 강력한 응징 조치와 결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장치 없이 '동결'이라는 단기 성과의 유혹에 다시 넘어간다면 이는 핵 협상가들의 사기(詐欺)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3/20170223035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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