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사건에 분노
말레이시아 "北 무비자 폐지하자"… 인도네시아 "북한식당 수사"

말레이시아 언론·주민들
"수사 잘못했다는 北주장에 분통… 외교관계 전반 재검토 나서야"
말레이·북한 아시안컵 축구 예선, 평양서 제3국으로 변경도 검토
태국紙 "아웅산 이어 또 피 뿌려… 아세안이 범죄 뒤처리 해야할 판"
 

김정남 암살 사건을 계기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반북(反北)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현지 매체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1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번화가 부킷 빈탕에서 만난 택시 기사 총(30)씨는 "북한 대사가 오히려 우리가 수사를 잘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뉴스를 보고 분통이 터졌다"며 "이번에 관계를 아예 끊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사이딘 나스리(42)씨는 "북한 사람이 많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는 잠재적 공격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날 "북한 대사의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외교적으로 무례한 것"이라며 "말레이시아 입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일간 더스타가 보도했다. 강철 주(駐)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19일 북한 국적자들을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지목한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평양 주재 대사 불러들인 말레이시아… 北에 화났다 - 21일(현지 시각)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한 본국의 소환 명령에 따라 북한을 떠나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공항에 도착한 모하맛 니잔(왼쪽) 북한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가 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모하맛 대사는 김정남 암살 수사에 대한 질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평양 주재 대사 불러들인 말레이시아… 北에 화났다 - 21일(현지 시각)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한 본국의 소환 명령에 따라 북한을 떠나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공항에 도착한 모하맛 니잔(왼쪽) 북한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가 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모하맛 대사는 김정남 암살 수사에 대한 질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언론에서도 북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날 사설 '말레이시아 주권과 법을 존중하라'에서 "증거가 있다면 조사하는 게 원칙"이라며 "북한이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든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북한이 비논리적 주장(illogical stance)으로 말레이시아의 공정한 수사권을 부정하고 있다"며 "말레이시아가 북한과 수교한 얼마 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물러서거나 겁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 영토에서 중범죄가 벌어진 만큼 우리나라가 안전하다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투명한 수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 일간 '베리타 하리안'은 "북한에 외교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외교 소통이 실패하면 비자 면제 프로그램 종료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무비자 협정을 맺은 국가이다. 모흐드 아지즈딘 사니 말레이시아 우타라대 교수는 "무비자 제도는 관광객 유입 등 다양한 이득을 주고 있지만, 말레이시아가 암살 장소가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의 스티븐 웡 부소장은 "만약 북한 정부가 암살을 주도했고 북한 공작원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양국 국민의 이동 문제뿐 아니라 북한과 맺은 외교 관계 전반이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지 중문 매체인 성주신문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것을 언급하며 "말레이시아와 북한 단교(斷交)의 전조일 수 있다"고 했다.

민간 관계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축구연맹(FAM)은 다음 달 28일 평양에서 북한과 벌일 예정인 차기 아시안컵 예선전 장소를 제3국으로 변경해 달라고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미딘 모흐드 아민 FAM 사무총장은 "평양에서 치를 경기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경기를 연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남 시신 안치된 병원 지키는 특수 경찰 - 21일 새벽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 앞에서 복면을 하고 소총으로 무장한 말레이시아 특수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바로 해산했다. /AP 연합뉴스
김정남 시신 안치된 병원 지키는 특수 경찰 - 21일 새벽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 앞에서 복면을 하고 소총으로 무장한 말레이시아 특수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바로 해산했다. /AP 연합뉴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찰 당국은 북한의 간첩 활동지로 지목된 자카르타의 북한 식당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자카르타 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김정남 암살 여성 용의자 중 한 명인 시티 아이샤의 국적이 인도네시아다. 아르고 유워노 경찰 대변인은 "인도네시아 내 북한 식당의 소유주, 면허와 관련한 조사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싱가포르 뉴스 통신사 아시아원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정찰총국 소속의 공작원들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에서 지난 20여년간 공작 활동을 벌였으며, 북한 식당을 정보 수집 및 감시 활동을 위한 근거지로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나라들을 방문하는 일본과 한국 정치인·외교관·기업인이 주요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매체는 "북한 공작원들은 활동 자금 마련을 위해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섬유 공장 등을 운영했고 마약 밀매에도 관여했다"고 전했다.

태국 일간 방콕포스트는 21일 '용납할 수 없는 북한'이란 사설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다시 동남아에서 긴장과 분노를 촉발했다"며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등 북한이 동남아에서 저지른 범죄들을 거론했다. 신문은 이어 "이번에 말레이시아에 피를 뿌린 것은 단순한 외교 사안을 초월한 사태"라며 "또다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김씨 3대 세습자의 살인범들이 자행한 더럽고, 피비린내나고, 야만적인 범죄의 뒤처리를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실제 명령을 내린 북한 고위층은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국제사회에서 언제나 법을 어기는 북한이 아직도 문명국가로 대접받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놀란다"며 "태국과 아세안이 법치를 거부하는 북한에 조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선 사건 용의자인 자국 여성들이 북한에 이용당했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북한은 국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영국 일 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북한은 외화 확보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쿠알라룸푸르에 관광 사무소를 설립했다. 지난 2015년 12월 문을 연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사원 옆 박물관도 북한 만수대 창작사가 만들었다. 북한 음식점들도 동남아에서 성업 중이다. AP통신은 "김정남 암살 사태로 동남아국들도 북한과 맺은 관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2/20170222002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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