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암살한 날 저녁 비행기로 말레이시아 탈출… 나흘만에 평양 복귀

- 北용의자들, 동남아 활동 공작원
김정남 말레이 오자 오종길 입국, 평양서 '암살 총괄'로 급파한 듯
리재남, 외화벌이업체 대표 위장… 30代 2명은 2차 공격조 가능성

- 탈출 계획까지 치밀하게 준비
1월부터 말레이 차례차례 잠입… 출국할 비행기표도 미리 끊어둬
암살 직후 화장실서 옷 갈아입어
 

19일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사건에 연루된 남성들이 모두 북한 국적자"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항 CCTV를 통해 확인한 용의자는 4명이었지만, 이날 발표에선 17일 체포한 리정철(47)을 포함해 5명으로 늘었다. 라시드 부청장은 "이들이 북한 공작 요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달아난 4명은 서로 다른 북한 공작기관 소속으로 보인다"며 "김정남 암살에 북한 공작기관이 총동원된 모양새"라고 말했다.

복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달아난 4명 중 리재남(57), 홍송학(34), 리지현(33)은 동남아를 거점으로 활동 중인 북한 해외 공작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리재남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군 소속 외화벌이 업체 대표로 위장해 공작 활동을 수행해온 인물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현지 총책'인 셈이다. 오종길(55)은 동남아에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이 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다음 날인 7일 말레이시아로 온 것으로 볼 때 이번 암살을 총괄하기 위해 평양에서 직파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 소식통은 "50대 중반 나이 등을 감안할 때 평양에서 동남아 일대 공작을 책임지는 인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달아난 북한 용의자 4명의 소속도 정찰총국,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 등으로 서로 다르다. 이는 김정남 암살에 북한 공작기관이 총동원됐다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체포된 리정철을 포함해 도주 중인 용의자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말레이시아 현지 정보통신(IT) 회사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리정철(체포)은 현지 상주 공작원으로 보인다.
독극물 공격에 정신 잃은 김정남 - 지난 13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뒤 공항 내 의료 시설로 옮겨진 김정남의 모습. 정신을 잃은 채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 /뉴스트레이트타임스
독극물 공격에 정신 잃은 김정남 - 지난 13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뒤 공항 내 의료 시설로 옮겨진 김정남의 모습. 정신을 잃은 채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 /뉴스트레이트타임스

말레이시아 경찰이 밝힌 용의자 중 30대인 홍송학과 리지현은 베트남 국적 여성인 흐엉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인 아이샤가 범행에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한 '2차 공격조'로 보인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플랜B' 요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각각 1월 31일과 2월 1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했다. 간첩 수사 경험이 많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은 1차 암살 시도 실패에 대비해 2차, 3차 공격조까지 준비한다"고 말했다.

18일 말레이시아 언론 뉴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남성 3명은 범행 현장에서 약 50m 떨어진 '비빅 헤리티지'라는 식당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범행이 벌어진 오전 9시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2차 공격조'인 홍송학, 리지현과 '암살 총책'인 오종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직 대남 공작원 출신 탈북자는 "북한 김영철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가면서 정찰총국(국무위원회 직속)에 있던 35호실(해외·대남 정보 담당)과 작전부(간첩 파견)를 다시 노동당 산하로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앞으로 북한 공작 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에 따르면, 리정철을 제외한 용의자 4명은 암살 사건 당일인 13일 출국했다. 현지 매체는 "이들이 비행기표를 미리 끊어뒀다"고 전했다. 사전에 탈출 계획까지 치밀하게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범행 직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인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말레이시아 중국어 매체인 중국보에 따르면, 이들은 13일 저녁 비행기로 말레이시아를 탈출해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17일 평양에 도착했다. 북한이 암살 행동 대원들을 신속하게 불러들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된 '상주 공작원' 리정철을 신속하게 도피시키지 않은 것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용의자들이 1년 전부터 김정남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마카오를 오가는 동선(動線)을 파악하고 암살 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암살 작전을 벌인 이유와 관련, 대북 소식통은 "북한 여권 소지자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할 때는 별도 비자가 필요하지 않아 북한 공작원들이 활동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김정남 을 보호하는) 중국 땅에선 암살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국적자가 주도한 김정남 암살 사건에 흐엉과 아이샤가 어떻게 연루됐는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사법 당국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했다. 인도네시아 매체 데틱에 따르면, 한국어를 구사하는 아이샤는 지인에게 "북한에서 영화를 촬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0/2017022000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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