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 외교가서 나오는 김정남 암살 배경
"김정은 그대로 두고서는 북핵문제 해결 불가능" 공감대
美 트럼프 정부 들어서며 정권교체론 본격적으로 퍼져
김정일 동생 김평일 옹립론도… 김정은, 충격요법으로 타개 시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 김정남을 갑작스럽게 암살한 것은 외교가에서 끊임없이 제기·확산되고 있는 '북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론'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국제 외교가에선 "김정은을 그대로 두고서는 북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움직임이 보이자, 김정은이 자신의 대안(代案)이 될 수 있는 백두혈통을 제거하며 "평양엔 나밖에 없다"는 충격요법식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소식통은 16일 "김정은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미국 등에서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김정은을 개방형 리더로 변화시켜 북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핵·미사일 도발, 잔인한 측근 처형 등의 행태를 보면서 '레짐 체인지'밖에 방법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김정남 대안 시나리오'는 특히 트럼프 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통화하는 등 중국의 최우선 핵심 이익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참모들은 세컨더리 보이콧의 필요성까지 거론하며 중국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미국이 저렇게까지 나오니 중국은 '북한에 사회주의 체제는 그대로 두고 김정은만 교체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대안은 김정남이 되는 것이고,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김정은이 김정남을 선제적으로 제거했을 수 있다"고 했다. 미·중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김정은'을 놓고 일종의 빅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트럼프가 취임 후 '반(反)이민 정책' 등 유세 때 공약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걸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김정은이 자리를 지키는 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이 높은 북핵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고 했다. 다만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협상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중국도 김정은 때문에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한 정권 교체까지 생각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김정남 대안론'과 더불어 '김평일(김정은 삼촌) 대안론'도 나온다. 홍콩 시사 주간지 아주주간은 작년 11월 "북한 안팎에서 김정은 대신에 김평일을 옹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駐)체코 북한 대사인 김평일은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 김성애의 장남으로, 김정일의 이복동생이다. 김일성을 빼닮은 외모와 타고난 보스 기질을 앞세워 남산고등중학교 시절부터 '김일성 후계자'로 꼽혔지만 1970년대 김정일과의 후계 경쟁에서 탈락하며 '곁가지' 신세가 됐다. 김정일·정은 부자의 집중 견제로 불가리아·핀란드·폴란드 대사를 지내며 30여년간 해외를 떠돌고 있다. 탈북자 K씨는 "문제는 40년 가까이 숙청 공포 속에 살아온 김평일 스스로가 김정은의 대안이 될 생각이 없다는 점"이라며 "김평일을 따르던 엘리트들도 김정일 집권 시절 씨가 말랐다"고 했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 대안론'도 제기하지만 대다수 북한 전문가는 "김평일 대안론보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대북 소식통은 "정철은 청소년기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심신이 온전치 못하다"며 "에릭 클랩턴 공연이나 보러 다니는 한량"이라고 했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김평일, 김정철 등은 비록 지금은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고 해도 어느 순간 '김정은 대안'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며 "충동적이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김정은 때문에 김평일·정철도 김정남의 운명을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7/20170217003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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