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한 지인이 중국과의 거래 무산을 하소연했다. 중국 쪽 요청으로 제빙기 수출을 진행하던 중 중국 파트너가 "수입할 수 없게 됐다. 양국 관계 때문이다"며 계약 직전 무산시켰다고 한다. 삼성 LG 롯데 등 대기업뿐만 아니다. 중국을 믿고 거래하던 중소기업들도 중국발 한풍(寒風)에 몸을 떨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으로 중국 TV에서 한국 드라마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내 방송에서 '보보경심' 등 중국 드라마가 늘어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모든 일이 중국의 사드 보복이란 걸 세상은 다 안다.

한·중 관계를 정상화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러려고 중국과 수교했나"라며 자괴감에 빠질 것 같다. 당시 천안문(天安門)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덩샤오핑은 한·중 수교 카드를 내밀었고 노 대통령이 그 손을 잡아주었다. '한반도에서 냉전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을 기대했다. 중국 측 실무자들도 "북·중 관계는 곧 보통 국가 관계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핵·미사일로 한국을 위협하고, 중국은 북한을 감싸며, 한반도는 신냉전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이 중국에서 돈 벌어 미국 무기를 사서 중국에 대항한다"고 말한다. 또 "한국이 중국에서 무역 흑자를 누리는 은혜를 모른다"며 경제 압박으로 고통을 주려 한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양국 관계에서 한국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얻는 분야는 없다. 가령 직접투자를 보면 1992~2015년 사이 한국의 대중(對中) 투자는 697억달러(약 83조원)로 중국의 한국 투자(81억 달러)의 8.6배에 달한다. 이것이 중국 경제 발전에 마중물이 된 것은 아무도 부인 못 한다. 5만개 넘는 재중 한국 기업은 수백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많은 세금을 낸다. 한국이 대중 무역에서 흑자를 얻지만, 중국은 한국의 중간재를 가공해 미국에 수출해 큰돈을 번다. 한국만 이익 보는 구조가 아니라 양국이 협력해 돈을 벌어 나누는 구조다.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페루를 방문 중인 황교안 국무총리(왼쪽)가 19일(현지시각) 페루 리마 컨벤션에서 열린 기업인자문위원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등과 함께 참석해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페루를 방문 중인 황교안 국무총리(왼쪽)가 19일(현지시각) 페루 리마 컨벤션에서 열린 기업인자문위원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등과 함께 참석해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관광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많아진 것은 최근 6년의 일이다. 그 이전 18년간(1992~2010년)은 중국에 가는 한국인이 훨씬 많았다. 지난해 중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2600만명) 중 한국인이 450만명으로 1위였다. 5000만 한국인의 9%가 중국을 찾은 반면 중국인의 0.4%만 한국에 왔다. 만약 중국이 '유커(遊客) 감축' 카드를 쓰면 한국인들도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중국이 경제·문화·관광 분야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중국 자신에도 해롭다. 중국 최대 FTA(자유무역협정) 파트너인 한국마저 중국과의 관계에서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면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중국 정부 리스크'를 다시 볼 것이다. 또 대중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중국은 이제라도 '아시아의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으려면 북핵 위협 앞에 놓인 한국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고 부당한 압박을 멈춰야 한다. '국가가 커졌다고 싸우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國强大, 好戰必亡)'는 시진핑 주석의 말(2014년 3월, 독일)을 스스로 되새길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8/2016121801543.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