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2/2016112203217.html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2/2016112203217.html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대화할 용의 있다던 트럼프… 고도의 협상술일 수도
美 새 행정부 들어서기 전에 먼저 구체적인 정책 만들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ㅇ"즉흥적으로(Off the cuff)."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답이다. 지난 7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다. 그러나 이를 정말 '즉흥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이 짧은 문장은 오히려 반어적이다.

트럼프는 말한다. "경험과 재능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재능을 택할 것이다. 그렇다고 경험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둘 모두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잭 니클라우스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골프대회에서 우승했는지, 베이브 루스가 그렇게 많은 홈런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그들에게 묻는다면, "나도 몰라, 그저 스윙했을 뿐이야"라는 답이 나왔을 것이라고.

남들이 보기엔 단순한 스윙이고 볼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었지만, 실은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오랜 경험이 그런 성과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트럼프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흔히 자신을 '예측 불허'라고 하지만, '좌충우돌' '우왕좌왕'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즉흥적으로 보일 뿐이지 재능과 훈련이 뒷받침된 '계산된 행보'라는 뜻이다.

하긴 그를 마냥 비정상적이고 돌출적인 사람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숱한 고비를 꿋꿋이 넘기면서, 16명의 공화당 예비후보자를 물리쳤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던 힐러리 클린턴조차 이겼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놀라운 성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재능 없이 운만으로 이만큼 오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 70년의 과정에서 쌓은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2006년 발간된 '트럼프식 협상(Trump-Style Negotiation)'을 보면 트럼프가 얼마나 '계산적'인가를 알 수 있다. 조지 로스라는 변호사가 30여년 동안 트럼프와 함께 일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협상의 목적은 상대에게서 최대한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트럼프의 방식은 다르다. 상대를 꺾는 것이 협상이 아니고, 나만 만족하는 것이 협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대가 기대한 것보다 더 얻을 수 있음을 확신시켜라"가 트럼프 방식의 핵심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는 유연한 태도로 다각적인 해법을 찾아라" 역시 그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희망을 걸어본다. 유세 기간에 그는 김정은을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고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상충하는 이 말도 '예측 불허'라기보다는 '다각적인 시도'이자 '고도의 협상술'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의 이상주의 대북 정책이 현실주의로 변화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하에 북한을 그저 무시하는 정책만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까.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들어서고 대북 정책의 대강이 만들어질 때까지 앞으로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것이다. 우리의 '골든타임'인 셈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먼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미국을 유도해야 한다. 비유컨대, 어떤 종류의 햄버거를 제안해야 하는지, 언제 어디서 먹자고 해야 할 것인지, 음료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그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트럼프도 '트럼프식 협상'의 추천사에서 자신은 비전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세부 사항은 맡겨두는 성향의 사람이라고 했다. 자칫하면 우리는 아예 소외될 수 있 다. 실제 트럼프는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전면에 나서게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걱정하기 이전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나저나, 트럼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냐고? '외교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저런 지경인데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겠느냐고? 그러나, 어떡하랴. 지푸라기에 붙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2/201611220321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