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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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은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국가경영 체제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에서는 통일 방안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강소국연방제'를 표방했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에게 그 발상 배경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스위스나 싱가포르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도 이 정도 규모로 나누어 자율적으로 경영하면 훨씬 더 잘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스위스의 원로 경제학자 프라이(Rene Frey) 교수에게 스위스를 잘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지방끼리 정책 경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혁신을 가져오는 연방제도"라고 했다.

분단국가에서 연방제도는 국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 원리다. 연방제도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분단된 식민지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기 위해 스위스의 서약동맹(국가연합의 일종)을 참조해 세계 최초로 창안한 정치적 발명품이다. 캐나다와 호주도 분단된 식민지들을 통일하기 위해 연방제도를 채택했다. 연방제도는 독자성을 가진 여러 지역정부가 전체로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해 다양성 속에서 통합성을 보장하는 지방분권적 정치 제도다.
 

1990년 11월 동서 국경개방 조치가 발표된 후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있는 독일 국민들. /조선일보 DB[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1990년 11월 동서 국경개방 조치가 발표된 후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있는 독일 국민들. /조선일보 DB[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독일 통일에 대해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했다는 오해가 많다. 법률적 해석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구 동독은 멸망했고 구 동독에 속해 있었던 주(지역국가)들이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했다고 설명한다. 구 동독 치하에서 소멸한 5개 주를 분단 전의 상태로 부활시켜 독일 연방에 가입하도록 했다. 각 지역의 고유한 자치 정치 질서를 보장해 통일의 충격과 혼란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통합을 꾀했다. 통일 과정에서 서독의 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은 구 동독 지역의 새로운 주· 지방자치단체들과 자매결연을 해 연방제하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수평적으로 전수했다.

우리는 통일을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 주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 통일헌법을 제정하려 한다면 만시지탄이 될 것이다. 건국 후 헌법제정 과정에서 겪은 혼란과 갈등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체제하에서 통일된다면 중앙정부가 북한 지역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챙기고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다. 북한 지역 주민들이 승복하기도 어렵거니와 중앙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도 금방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통일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지역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포용할 수 있는 정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 두 지역을 구성단위로 하는 기존의 통일 방안은 사사건건 남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도(道) 단위 지역정부가 각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하는 연방주의적 지방분권이 현실적인 통일 방안이다. 우선 남한부터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지역 문제는 지역정부가 자기 책임으로 해결하는 자치 경험을 먼저 축적해야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남한의 지역정부들이 북한의 지역정부들에 축적된 지방분권적 자치 경험을 전수하고 지원해 통일의 충격과 갈등을 완화하고 통일 비용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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