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2007년 북한 김정일 정권에 의견을 물어본 뒤 북이 반대하자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는 '송민순 회고록'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북에 물어보자고 제안했다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 당시 회의 참여 인사들은 일제히 회고록 내용을 부인하고 나왔다. 측근 의원은 인권결의안 기권을 결정한 후에 북에 통보만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파장에 당혹해하면서도 책 내용이 사실이라고 거듭 밝혔다. 송 전 장관도 당시 회의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북에 물어보는 과정을 주도했다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표는 엊그제부터 페이스북에 해명 글들을 올리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북한 정권의 의견을 확인토록 했다는 핵심 부분에 대해선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에게 물어보고 기권했다는 게 사실이어서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문 전 대표는 해명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수의 의견을 듣고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을 결정했다"며 되레 "(그런 점은) 박근혜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했는데 이런 엉뚱한 얘기로 국민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여당에 대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 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북에 물어보았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 외교부 장관이 밝힌 것이다. 문 전 대표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할 당시를 "남북 관계의 황금기"라고 자평(自評)했다. 그 '황금기' 중에 지금 우리 민족을 절멸시킬 수 있는 북한 핵폭탄이 만들어졌다. 그는 "선제 타격이니, 핵무장이니, 전쟁이니라는 말로 평화를 깨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수준 낮은 정치를 중단하자"고 했다. 정부가 선제 타격, 핵무장, 전쟁과 같은 언급이나 발표를 한 적 자체가 없다. '전쟁이냐, 평화냐' '전쟁하자는 거냐'는 수준 낮은 국민 위협으로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것은 햇볕론자들의 상투적 방식이다. 이제 국민도 헛된 환상으로 북핵 대응을 그르친 햇볕론자들의 책임 회피와 아집을 웬만큼 알게 됐다.

문 전 대표는 북에 물어본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집권하면 또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민의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송민순 회고록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2007년 8월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고도 미국에 제때 알려주지 않았다. 북의 1차 핵실험으로 미국이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노 정부는 거절했다. 문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문 전 대표는 지금도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보다 김정은 정권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앞으로 북핵 등 대북 관계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또 김정은에게 물어볼 것인가. 여기에 대해 문 전 대표는 말을 돌리지 말고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생각을 국민 앞에 정확하게 밝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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