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양시 화정2동 동사무소 회의실. 인근 아파트 주부들이 모여 고양지역 문화재와 볼거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엽동 회화나무, 덕이동 송포백송(송포백송), 화정동 고인돌 등 소재도 다양했다. 일산동 고봉산에 얽힌 고구려 안장왕의 전설도 흥미있게 소개됐다.

이날 모임은 화정2동 아파트 주부들로 구성된 지역답사단체 ‘꽃우물’의 회의 자리였다. ‘화정(화정)’이란 마을명에서 이름을 땄고, 인근 별빛마을·옥빛마을 아파트 10개 단지 100여명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은 9차례에 걸쳐 고양, 파주, 영월 등이다.

‘꽃우물’이 시작된 건 지난해 9월, 모임 회장인 이기주(이기주·여·40)씨 등이 제안하면서부터다. “신도시 아파트라서 그런지 이웃들 간에 교류가 전혀 없어 좀 삭막했죠. 그래서 부녀회 등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나섰죠. ”

고양지역 향토사학자인 정동일(정동일·35) 고양시 역사연구위원이 지도를 맡고, 동사무소가 모집 공고를 내는 등 도움도 많이 받았다. 순식간에 40여명이 모였고, 답사 이외에 역사학습 모임도 수차례 가졌다. 모임이 커지면서 아파트 단지별 대표도 뽑았다.

옥빛마을 대표인 엄옥희(엄옥희·여·32)씨는“아파트 단지 곳곳을 다니며 답사여행을 알리다 보니 얼굴을 몰랐던 이웃과 자연스레 친해졌다”며 “답사를 다녀온 주부들 사이에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면서 인기 모임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민들이 너무 많이 몰려 반상회 홍보 등은 오히려 자제하고 있다.

현재까지 답사여행에 참여한 주민들만 400여명. 여행을 마친 뒤에는 사진첩과 간단한 소책자도 만들었다. 15단지에 사는 황청연(황청연·여·41)씨는 “함께 사진을 고르고 설명을 붙이면서 이웃간 정이 싹트는 것 같다”며 “역사도 배우고 이웃사촌도 사귀어 일석이조(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박용남(박용남·52) 화정2동 동장은 “관내 아파트 주민들이 전체의 98%나 차지해 주민 친목에 특별히 신경을 써왔다”며 “모임 덕분에 어느 아파트촌보다 더 정겨운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답사 범위도 넓히고 참여 주민도 확대할 계획이다. 북한 지역 답사를 위해 역사공부를 하고 있고, 답사기록을 모아 출간도 할 예정이다. 다음달부터 본격 추진되는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에 이 모임을 포함시켜 지자체 지원도 받을 생각이다. 정동일 연구위원은 “서울 등 다른 지역 아파트에도 주민들끼리 역사공부하는 모임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아파트촌이지만 향토애를 서로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c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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