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법무부, '北核 돈세탁' 中 훙샹 이례적 동시 제재]

- "훙샹, 北의 차명 계좌 역할"
단둥 훙샹실업과 위장회사 4곳
中 은행 12곳·美 은행 2곳 통해 각국에 北물자 구입 대금 송금

- 中, 北 제재 수위 어디까지
北 붕괴와 민생 제재 원치 않아 '레드라인' 넘는 제재는 안 할 듯
 

중국 단둥(丹東) 훙샹(鴻祥)그룹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이번 제재는 북한과 거래해온 중국 기업들에 강력한 경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미국의 독자 제재 리스트에 올리고 마는 게 아니라, 형사 기소를 포함해 자금 세탁 의혹이 있는 중국 은행 계좌에 대한 몰수라는 물리적 조치까지 동반했다.
 이번 조치로 훙샹과 개인 4명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미국 내 경제활동도 일절 금지된다. 미국의 2개 부처가 한꺼번에 제재 방침을 밝힌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북핵 차단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 발표를 종합하면, 훙샹그룹은 미국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인 북한 조선광선은행을 위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연구위원은 "한마디로 조선광선은행이 달러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달러 자금 세탁 창구를 맡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훙샹그룹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세이셸 제도, 홍콩 등 역외 지역에 위장 회사 4곳을 세웠다. 이 4개 사와 그룹 핵심 훙샹실업발전유한공사(훙샹실업)는 중국 내 12개 은행과 거래를 하면서, 이 은행들의 미국 측 거래 은행 2곳을 통해 세계 각국 은행에 달러화를 송금해왔다. 제재로 발목이 묶인 조선광선은행을 대신해 물자 구입 대금을 보낸 것이다. 사실상 훙샹그룹 관련 회사 5곳이 중국 내 은행에 갖고 있는 계좌가 북한 조선광선은행의 차명 계좌 역할을 한 셈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입수한 미 법무부의 소송 문건에 따르면, 훙샹 측은 중국농업은행, 상하이 푸둥발전은행, 교통은행, 단둥은행, 건설은행, 광둥발전은행, 공상은행 등 12개 중국 은행 25개 계좌에 약 7440만달러를 입금했으며 이 중 1560만달러가 미국 뉴저지주(州)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도이치방크 등 2곳을 통해 돈세탁 됐다. 미 법무부는 중국 은행 계좌에 남아 있는 훙샹의 자금을 모두 몰수할 계획이다.

미국 법무부는 그러나 "이 미국 은행들 및 그와 거래한 외국 은행(중국 은행들을 의미)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정황은 없다"고 했다. 이들의 책임은 묻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미국이 면책 방침을 밝혔지만 이번에 자금 세탁과 관련된 12개 중국 은행은 목덜미가 서늘할 것"이라며 "이번에 연루된 은행뿐 아니라 다른 중국 은행들도 북한 관련 거래를 거들떠볼 생각을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를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해 북한 자금을 동결시켰던 것과 유사한 대북 제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이행이 "중국뿐 아니라 대북 거래 중인 제3국 개인과 단체들의 경각심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환영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각국이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더욱 충실히 이행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타냈다.

관건은 중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북 제재 수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가느냐는 것이다. 일부 중국 인터넷 매체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독단적인 행동을 계속한다면 단교(斷交) 및 대북 물자 반입 금지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원유 공급 중단 등의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을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27일 서울에서 열린 '세종프레스포럼'에서 "중국의 레드라인은 북한 정부가 붕괴해서는 안 되고 민생에 영향을 줘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베이징에서 현지 전문가들과 면 담한 내용을 근거로 "중국이 동의하는 안보리 제재의 범위는 기존 대량살상무기(WMD) 품목과 관련된 것에 한정될 것"이라고 했다. 북·중 접경 지역의 한 대북 소식통도 "중국이 이번 조사 결과 조선광선은행 외에 훙샹과 거래한 북한 측 개인이나 기업을 추가로 밝히는 수준까지 나간다면 대북 제재 효과가 극대화되겠지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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