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난 10년간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이 위축되기는커녕 그 사이 열 배가량 커져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제재 무용론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제재 무용론은 대북 대화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북한과 핵협상을 해야 한다는 대북 대화론은 지난 10년간의 대북 제재가 50개도 안 되고 내용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 관련 단체와 개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편협한 체제였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유엔의 북핵 개발 관련 제재 대상 단체와 개인은 32개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이란은 제재 대상 수가 400개를 넘었다.

일각에선 북한 사회와 경제가 폐쇄적이어서 제재 대상이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스웨덴 안보연구기관인 SIPRI는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북핵 개발과 관련된 161개 단체와 개인을 확인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의 국방문제연구센터(C4ADS)가 발표한 공동연구보고서 '중국의 그늘 속에서(In China's Shadow)' 또한 유엔 제재 대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개인, 단체, 선박 562개를 밝혀냈다. 물론 이들 모두가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제재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폐쇄적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북한의 대외경제 네트워크는 훨씬 광범위해서 마음만 먹는다면 제재를 가할 대상도 지금보다 몇 배 더 많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 관련 물자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훙샹산업개발공사가 입주한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건물. 훙샹개발공사는 이 건물 16층에 입주해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 관련 물자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훙샹산업개발공사가 입주한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건물. 훙샹개발공사는 이 건물 16층에 입주해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그중 하나가 이번에 드러난 랴오닝훙샹(遼寧鴻祥)이다. 랴오닝훙샹은 최근 5년간 북한과 연평균 1억달러가량의 무역 거래를 해왔다. 이 중 해외 연구기관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수면에 드러난 랴오닝훙샹의 이중 용도(dual use) 품목 거래는 25만달러 정도다. 하지만 2013년부터 연 교역량이 60억달러에 육박한 북·중 무역의 규모를 볼 때 랴오닝훙샹을 더 조사하거나, 북·중 무역의 이면을 파고든다면 밝혀낼 수 있는 북한 정권과 중국 기업 간의 불법 무역 사례는 상당할 것이다.

설사 새로운 제재 대상을 찾아내더라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이상 강력한 대북 제재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랴오닝훙샹의 사례를 보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 중국도 협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사법 당국이 중국에 조사단을 파견한 시점은 지난 8월이다. 당시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한국과 미국을 맹비난할 때이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9월 9일 5차 핵실험 이전에 이미 랴오닝훙샹 관련 자산을 동결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자국 기업의 제재 조치 위반을 외교적 마찰과 분리 대응한 걸로 볼 때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충분함을 알 수 있다.

지난 10년간 대북 제재 체제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이유에는 우리나라의 전략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 관련국과 제재 대상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 측면이 있다. 제재 무용론은 약을 쓰지도 않고 약효가 없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핵위기가 엄중한 만큼 더욱 치밀하고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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