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가 지난 1월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 검토(Nuclear Posture Review)’ 비밀보고서를 둘러싼 논쟁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 NPR의 주요 내용과 의미 =미국 국방부는 이 보고서에서, 유사시 핵무기 사용 대상국으로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 외에도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이라크·이란, 그리고 리비아와 시리아 등 7개국을 지목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면적으로 미국의 잠재적 핵 공격 대상국가를 늘렸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미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상황을 종전보다 훨씬 폭넓게 상정(想定)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그같은 상황이란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는 지하 군사시설 등에 대한 공격 상대방의 핵·생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 돌발적인 군사 사태 등이다. 보고서는 이런 상황들에 쓰기 위해 적합한 소형 핵무기를 새로 개발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가령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70개국에 약 1만개의 지하 군사시설이 있으며 그 중 1400개는 지휘통제소와 핵·생화학무기 제조 및 비축용 시설을 갖춘 ‘전략적’ 지하 요새이다. 현재로선 미국이 이런 지하시설에 대처하는 적절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 못해, 이들을 파괴할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인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와 관련, 군사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이같은 차세대 핵무기 개발을 위해 1992년 이후 10년간 지켜온 핵실험 유예를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핵무기에 관한 논의는 핵무기 보유 여부와 그 규모에 있었기 때문에,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무기 감축에 초점이 모아졌었다. 핵무기는 그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실제 사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핵무기 보유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공격을 억지(抑止·detterence)하는 힘이었다. 즉, ‘최후의 수단’이 아니고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불문율(不文律)이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선제공격용으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점에서, ‘핵무기를 전쟁 억지보다는 전쟁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러나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주로 러시아를 겨냥해 보유해온 ‘전략 핵무기’들은 대폭 폐기·감축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 NPR을 둘러싼 쟁점 =NPR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이 작성·보완해 왔고, 또 그것 자체가 작전 계획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적어도 개념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넓혔고, 그것을 위해 새로운 소형 핵무기들을 개발할 필요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다른 차원의 국제적 우려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번째 쟁점은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나 테러집단에 과연 핵무기를 사용해야 하는가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갖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미국이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소극적 핵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정책을 내세워 핵무기 확산을 막으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미국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적(敵)은 러시아나 중국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극단적인 테러 집단이나 불량배 국가(rogue states)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핵무기로 비핵(非核)국가를 공격하려 한다면 이들 국가들도 핵을 가지려 애쓸 것이고, 그러면 핵 확산 방지 노력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위협한들 독재자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을 단념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 국방대학의 핵무기 전문가인 한스 비넨디크는 “과거 소련은 많은 국민과 보호할 자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핵무기로 소련을 저지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은 잃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더이상 그것이 작용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셋째, 다른 핵보유국들도 비슷한 정책을 택했을 경우의 위험성이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핵 전문가인 조지프 시린시온은 “만일 인도가 카슈미르 지방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잡기 위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부시 행정부의 새 핵정책은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NPR이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미국은 1978년 카터 행정부 때 천명했던 것처럼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소극적 핵 안전보장)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재래식무기와 핵무기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한다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비판론자들의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 李庸舜기자 ysr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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