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보고서 '김정은의 대담한 도전' 펴낸… 방찬영 키메프대학 총장]

'돈 줄 테니 변화하라'는 햇볕정책 방식은 곤란
전략적 청사진 갖고 北에 개혁 처방전 줘야

1993년 訪北 당시 김용순
'북한 많이 어렵다, 개혁·개방 가능성 말해달라'고 요청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핵(核) 보유로 인한 손익 계산을 해봤다. 국제 제재로 북한 GDP는 -4.6%로 떨어졌다. 나라 운영이 안 된다. 통치 자금도 만들 수 없다. 당신이 체제 유지를 하려면 공개 처형을 계속하는 수밖에는 없다. 인권 문제에다 탈북자들은 더욱 늘어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 계획이 중도에 무산됐다."

 

 

방찬영 총장은“북한은 체제 내 개혁으로는 안 되고,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방찬영 총장은“북한은 체제 내 개혁으로는 안 되고,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방찬영(80) 카자흐스탄 키메프대학 총장은 작년 말 방북을 추진했다. 그는 구(舊)소련 연방 카자흐스탄의 개혁·개방에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외국인으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경제특보와 경제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런 그가 팔순 나이에 "북한 개혁·개방이 마지막 숙원 사업"이라며 북한 전략 보고서를 만들었다. 방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강연안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그러자 북한에서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 담당 부서에서 책임을 져야 할까봐 김정은에게 보고도 안 했을 것이다. 김정은을 만났으면 '당신이 살려면 비핵(非核)으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분석을 해보면 체제 관리 능력을 잃었고 파탄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대놓고 말해줬을 것이다."

서울에 체류 중인 그와 두 차례 만났다. 어떤 문제에서는 격렬한 논쟁도 있었다.

그는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채 끝나지 않은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 들어간 적이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초청받았다.

"당시 평양에서 만난 김용순 통일전선부장(2003년 사망)은 '북한이 많이 어렵다. 미국이 우리를 압살하고 있다.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뒤 1996년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북 아태위원회 사절단과 만나 북한 개혁·개방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어떤 내용이었나?

"북한이 개혁·개방을 단행하면 김정일 통치 체제는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 밖이다. 그때 개혁·개방을 반대했다는 뜻인가?

"당시에는 그랬다. 북한에서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식의 개혁·개방을 해내기가 어려웠다. 주체사상과 권력 정통성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남쪽에는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 존재하고 있기에 자칫 개혁·개방을 하다가는 정권이 먼저 무너질 수 있었다."

―어찌 납득이 안 되는데….

"북한의 경제 낙후는 주체사상과 선군(先軍)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정치 체제의 개혁 없이는 개혁·개방이나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정치 개혁을 먼저 하도록 주문하면 되지 않았나?

"김정일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구현자로서 권력을 승계했고 정통성을 확보했다. 주체사상을 포기하는 것은 정통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개혁·개방을 할 수가 없었다."

―중국처럼 '경제특구(特區)'를 통한 점차적인 개방은 가능했지 않았나?

"경제특구에는 합영법, 송금법, 토지임대법 등이 마련되고, 노동시장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개성공단의 예로 보듯이 북한 정부가 계약 주체가 되어 노동력을 일괄 공급하는 식이면 개방의 의미가 없다. 체제 내 개혁으로는 안 되고,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때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또 개혁·개방을 뒷받침할 돈도 없었고…."

―개혁·개방을 위해 돈이 필수적인가?

"개방은 그전까지 사상(思想) 교화, 처벌 등으로 통제해온 북한 사회의 모든 부조리가 공개되는 걸 의미한다. 그런 수단을 더 이상 쓸 수 없다. 당과 군 엘리트나 주민들을 '돈 인센티브'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기업의 보상 시스템처럼?

"그렇다. 또 개혁의 핵심은 '사유화(私有化)'다. 자본·기술·경영 노하우가 없는 국영기업은 사유화가 될 경우 거의 다 도산한다. 엄청난 부작용이 생긴다. 배급 제도도 무너진다. 주민 복지 제도와 기반 시설 인프라를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때는 이런 돈을 받아낼 상대가 없었다. 해온 대로 그냥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을 때 북 사절단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충격받을 게 뭐 있는가. 해온 대로 하면 되는데?

"기대를 꺾은 것이다. 살길을 찾아 달라고 했는데 도움이 안 된 거다. 암 환자에게 '수술해도 안 된다'고 하면 화내는 것과 같다. '박사님은 다시는 북한에 못 들어온다'는 경고를 받았다. 내가 너무 솔직했다. 학자의 양심으로 거짓말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 체제의 안정만 염두에 두고, 그 속에 있는 주민들의 고통은 생각 안 했나?

"무슨 뜻인가?"

―개혁·개방으로 정권이 붕괴되면 그거야말로 북한 주민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김씨(金氏)의 세습 독재 체제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정권 붕괴는 통제 불능의 혼란만 낳고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이는 남한에도 재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할 수 있는 기회다."

―김정일 정권 때는 개혁·개방이 어렵다고 했다가, 지금에 와서는?

"개혁의 당위성이 생겼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체제'를 물려받았다. 경제 규모에서 장마당의 비율이 50%로 커졌다. 이제는 개혁·개방을 해도 아버지(김정일) 때처럼 부담이 안 된다. 무엇보다 핵(核)무기의 보유로 상황이 급전됐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 정권은 체제 관리가 어렵게 됐고, 동시에 이로 인해 개혁·개방을 추진할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핵무기로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북한이 핵과 화학무기 등을 모두 포기하는 조건으로 남한에 연간 300억달러씩 10년간 받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체제 보장 약속을, 일본에는 식민지 보상을 지불받고…. 이렇게 하면 개혁·개방의 밑천이 된다."

―북한이 돈을 받는 조건으로 핵 포기를 할 리도 만무하고….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면 이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통치 자금도 못 만드는 형편이 된다. 김정은이 북한의 위대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지도자가 될지, 아니면 암살당하는 독재자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연 300억달러(31조원)씩 10년간 줘야 한다고 했나?

"심도 있는 경제 분석을 통해 나온 액수다. 300억달러 중 100억달러는 현찰로 받아 엘리트 계층 관리와 인건비 등에 쓴다. 나머지 200억달러는 '바우처(voucher)'로 받아 한국 기업들에 인프라 건설을 맡기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활로가 된다."

―우리 국민이 그런 천문학적 지원에 동의할 것 같은가? 국민 세금을 더 거둘 것인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GDP의 2.5%다. 급격한 붕괴로 인한 통일 비용은 이보다 열 배나 더 든다."

―통일된 상태라면 감수해야 할지 모르나, 분단 상태에서 우리가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해 연간 31조원을 내놓는 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 말고는 북핵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 10년에 걸쳐 완벽하게 비핵화를 검증하고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이 북한 개발에 참여하면 경제적 살길이 열린다. 한반도가 동북아의 경제 허브가 될 수 있다."

―햇볕정책을 채택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막대한 대북 지원을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핵무기였다고 보수층은 보는데?

"나는 햇볕정책에 찬성한 적이 없다. '우리가 돈을 주니까 너희가 변화해라'는 햇볕정책은 곤란하다, 포괄적인 북한 개발 청사진을 갖고 '너희가 발전하려면 이렇게 개혁·개방을 하라'고 처방전을 줘야 한다. 그런 청사진이 없이 가령 경수로 건설에 얼마를 지원해주는 식은 도움이 안 된다."

―솔직히 우리는 북한 정권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현 정권의 '한반도 상호 신뢰 프로세스 원칙'은 이제 의미가 퇴색됐지만, 북한이 믿을 수 있는 자세를 보이면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현 정권의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뭔지 모르겠다. 선언만 있지 내용이 없었다.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역대 정부는 늘 북한의 변화에 손을 내밀어 왔다. 다른 계산을 하고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은 북한이지 않은가?

"진정성 있는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평화 공존·통합이 목적이지, 북한이 원치 않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줘야 한다."

―북한 권력 수뇌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집단이면 벌써 살길을 택했다. 이제는 공포정치를 일삼는 김정은 정권의 교체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압박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나 전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의 보고서는 김정은에게 전달되지 않았는데.

"오는 10월 우리 대학에서 중국·러시아·영국 전문가들을 불러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시진핑과 푸틴에게 전달되게 할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다시 북한에 접근하는데?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실패한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원치 않는다. 오히려 북한이 개혁·개방하고 화해 국면이 되면 미군의 영향력이 준다."

☞방찬영은

1975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교수 겸 아시아문제연구소장을 맡아 구(舊)소련의 경제 문제 전문가로 알려졌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에서 강연을 했고 고르바초프와도 면담했다. 그 뒤 소련 연방인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연결돼 개혁·개방 작업에 참여했다. 그 는 카자흐스탄에 시장 경제를 담당할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설립을 제안했고, 1992년 중앙당 공산당 간부학교 건물에 키메프대학을 세웠다. 대학 지분 중 60%는 그의 소유, 나머지 40%는 국가가 갖고 있다. 이 대학은 서방 교수진에 의해 영어로 강의하며, 학비는 8000달러가 넘는다.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한다. 최고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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