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5명의 한국행 성사로 용기를 얻은 `정치운동가'들은 중국 등지에서 탈북자를 위한 더욱 극적인 활동을 약속했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끈 역사적 사건들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라는 제하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평양에서 18개월 간 의료지원활동을 하다 북한 비난 혐의로 지난 2000년 12월 추방당한 독일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44)이 '우리는 많은 난민들을 대사관들로 데려갈 것이고 그것은 북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추방 후 본격적으로 북한 실상을 폭로해온 폴러첸은 '이것은 1989년 체코와 헝가리에서도 일어났던 방식'이라며 '탈출자가 처음엔 수십명이었으나 나중엔 수백, 수천명이 됐다'고 말했다.

신문은 지난 14일 탈북자들의 주중 스페인 대사관 진입은, 지난 1989년 9월 1100명의 동독 탈출자들이 체코 수도 프라하 주재 서독대사관 담을 넘어들어가 망명과 서방으로의 안전통과를 요구했던 사건을 계획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분석했다.

신문은 난민 옹호자들, 기독교 선교사들, 보수적 정치운동가들이 몇 년 동안 은밀히 중국 내 탈북자들과 함께 일해오다 지금은 더욱 대담한 행동으로 (탈북자 문제를) 국제무대에 등장시킬 시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운동가들의 목적이 탈북자들을 돕는 것 외에 `희석되지 않는 공산주의의 마지막 요새'인 북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련의 사건을 촉발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탈북자들을 지원한 단체중 하나인 일본 `북한난민구호기금'의 나카히라 겐기치 회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몰리는 것을 본 것처럼 더 많은 탈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탈북 지원자들이 당초 프라하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벌어졌던 대사관 농성과 같은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베이징 주재 독일 대사관 진입을 고려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경비가 덜 삼엄한 스페인 대사관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신문은 스페인 대사관 진입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비밀작전으로 신원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약 30명의 일본.미국.유럽인 등으로 구성된 그룹이 몇 개월 간 대사관들의 경비상태를 미리 살피고 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이 그룹은 탈북자들 가운데 지적 수준과 결의 정도로 여섯 가족과 개인 3명을 선정한 뒤 예행연습까지 시켰다면서 이들은 대부분 한때 중국 경찰(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기 때문에 독약을 소지하는 등 이번 행동에 목숨을 걸었다고 밝혔다.

폴러첸은 '이들은 가장 용감했고 북한에서 매우 나쁜 몇몇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중국에 1-2년 살았기 때문에 영양상태가 좋고 사정에 정통했다'면서 '만일 북한 국경을 갓 넘어온 사람들을 골랐다면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LA 타임스는 중국이 점점 고립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책무와 인권문제 개선 열망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나 운동가들은 후자쪽이 우세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폴러첸의 최대 희망은 이번 거사 성공 소식이 평양이나 적어도 외국 TV에 접근할 수 있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폴러첸은 '그들(북한 엘리트)은 어리석지 않으며 역사에 관해 알고 있다.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정치운동가들이 탈북자를 도울 목적으로 몽골 등 아시아의 난민수용소 건설을 위한 미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면서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얼마전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것도 이런 지지를 유도하는 데 활용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LA 타임스는 북한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최근의 탈북자 증가가 앞으로 다가올 `큰 일'의 전조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있다고 밝혔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는 '북한은 실패한 나라로 중국의 변화가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 반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중 관계가 매우 강하고 중국이 북한의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으며 남한인도 대부분 엄청난 통일비용이 소요된 통독의 경험을 교훈삼아 `대폭발'(빅 뱅)이 아닌 점진적 변화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로스앤젤레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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