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베이징 특파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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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중국이 약소국 필리핀이 제기한 국제 중재소송에서 일방적으로 패했다. 사실 남중국해의 85%를 '내 땅'이라고 하는 건 어느 나라가 봐도 무리다. 그런데도 중국 식자층조차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고 한다. 중국의 외교는 그런 국민을 일깨우지도 못하고, 치밀한 준비로 패배를 막지도 못한 채 나라와 함께 국제 망신의 길로 걸어갔다. 변명의 여지 없는 외교 실패다. 민주국가라면 외교 수장이 날아가고 정권이 휘청거릴 일이다.

변화가 있긴 있었다. 중국 관영 CCTV 일기예보가 달라졌다. 해상 날씨를 전하는 그래픽 화면에 전에 없던 '남해 구단선'이 슬그머니 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보 대상 지역에 남중국해 분쟁지역인 난사군도, 시사군도, 중사군도가 새로 들어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름만 섬일 뿐 거의 전부 주민이라곤 없는 암초들이다. 최소한의 문책이나 자성 대신 자국 영토 논리의 일상화·편재화를 택한 중국을 보며 처음엔 쓴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엔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중국의 일방적 사고는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국 정부의 말에는 아예 귀를 닫고 있다. "만약 중국과 국경을 접한 국가가 중국을 겨냥해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한다면 가만히 있겠느냐?" "핵 개발도, 장거리 미사일 개발도 포기한 한국이 자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근본 원인이 북한이라는 것은 인정하느냐?" 한국으로선 마땅히 제기해야 할 물음인데, 중국 정부는 대답 대신 '뭐라고 해도 안 믿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7월 어느 사드 반대 집회에 내걸린 플래카드. /조선일보 DB[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7월 어느 사드 반대 집회에 내걸린 플래카드. /조선일보 DB[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대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일주일 새 한국인 필자를 두 번이나 등장시켜 사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인민일보는 당 선전부가 기사와 논조를 정하는 선전 매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사드 반대'를 공언한 이상 실을 수 있는 말은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노무현 정권 청와대 비서관, 모 사립대 교수라는 두 사람도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논리를 폈다. 역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걸 중국만 모르는 듯하다.

그런 중국을 보면서 '거울이 없는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남중국해든 사드든 오직 자기만의 관점으로 일방 질주하다 보니 국제법정에서 참패하고, 안보 주권을 행사하려는 이웃 나라를 지금처럼 거칠고 조악하게 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포린 폴리시'가 남중국해와 사드 문제를 근거로 '중국 외교 실패'를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 나라에 대해 걸핏하면 보복을 외치는 환구시보라는 매체는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반응이다.

그런 나라와 이웃해 살려면 우리 국민이 더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인민일보에 기고했던 두 사람이 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사드에 반대하는 건 맞는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 언론에 다 했다. 필요하면 그걸 인용하라. 내 나라를 비판하는 말을 외국 언론에, 그것도 언론 자유가 없는 중국 매체를 통해 하고 싶지는 않다. 내 글을 싣고 싶다면 중국에 대한 비판도 허용하라." 그랬다면 중국이 한국 지식인 사회, 더 나아가 한국을 쉽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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