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정치부 차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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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3년 11월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주변국 외교의 '4대 키워드'를 결정했다. 친(親)·성(誠)·혜(惠)·용(容)이란 네 글자가 그것이다. 주변국과 친(親)하게 지내고 성의(誠)를 다하며, 중국의 발전 혜택(惠)을 나누면서 포용(容)하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주변국을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이후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의 '친·성·혜·용'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시 주석은 해외 순방 때마다 "각국이 중국 발전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말까지 했다. 중국이 정말 '대국(大國)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과거처럼 힘으로 주변국을 윽박지르지 않고,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키워 주변국의 존중을 이끌어내려는 것인 줄 알았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25일 오전(한국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돈찬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양자회담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의 발언을 듣던 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25일 오전(한국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돈찬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양자회담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의 발언을 듣던 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그러나 라오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보여준 왕이 외교부장의 '연출 외교'는 시 주석이 천명한 '친·성·혜·용'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당시 왕 부장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 등을 설명하자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괴는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윤 장관이 웃으며 중국어로 "니하오(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했지만, 왕 부장은 화가 잔뜩 난 듯한 표정으로 응했다. 평소에는 부르지도 않던 한국 기자들을 회의장에 모아놓고 "사드 배치가 쌍방 신뢰를 훼손했다"고 소리쳤다. '왕이 쇼'는 북·중 회담 때도 펼쳐졌다. 윤 장관을 만날 때와는 달리 북한 리용호 외무상을 회담장 문 앞까지 나가 영접했다. 리용호의 등에 손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하는 듯한 모습도 연출했다. 우리를 자극하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이런 게 주변국을 끌어안겠다는 시 주석의 '친·성·혜·용 외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게 외교라지만 지켜야 할 예의가 분명한 것도 외교다.

중국 지도자들은 맹자의 '왕도(王道) 정치'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인(仁)과 덕(德)으로 주변을 감화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시 주석 역시 지난 2014년 11월 공산당 전체회의를 마치고 "법(法)과 덕(德)을 이용한 통치의 결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지도자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는 '패도(覇道) 정치'다. 힘으로 억누르는 것을 가장 하수(下手)로 보는 것이다. 중국이 내부적으로 미국을 비판할 때도 '패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25일 오후(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북-중 양자회담 시작 전 중국 왕이 외교부장(왼쪽)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을 맞이하러 문 밖까지 나와 악수를 한 뒤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5일 오후(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북-중 양자회담 시작 전 중국 왕이 외교부장(왼쪽)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을 맞이하러 문 밖까지 나와 악수를 한 뒤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왕이는 능력을 인정받는 외교관이다. 내년 당 대회에서 외교 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 승진을 노리고 있다. 이번 '왕이 쇼'는 남중국해 영유권 국제 재판 완패 등으로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나갔다. ARF에서 왕이가 보인 태도는 결정적 순간에 '근육'을 자랑하던 중국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왕도는커녕 패도에 가까운 행태였다. 중국은 '대국 외교'를 꿈꾼다. 대국 외교가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시 주석의 '친·성·혜·용'이었다. 왕 외교부장의 행동은 이런 꿈을 걷어찬 것이자 중국에 대한 주변국의 의심만 키우거나 강화한 패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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