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조사 첫날, 어여쁜 여의사가 채혈실로 들어오라 한다. 아니, 채혈통이 다섯 개? 북한의 다섯 배다. 정신 홀려 내장이랑 피 뽑아 팔아먹는다더니, 역시 계급적 '원쑤'는 변하지 않는 것인가. '뉴턴의 4법칙'을 써야겠군. 뇌물 받은 자는 무조건 움직이게 돼 있지, 고럼."

국내 첫 탈북자 웹툰 작가가 등장했다. 평양 출신 최성국(36)씨다. 지난 5월 탈북 남성의 열혈 남한 정착기를 다룬 네이버 웹툰 '로동심문'을 시작해 지난 5일 준(準)프로 대우를 받는 '베스트 도전'으로 승격됐다.

반응은 뜨겁다. "처음 보는 웹툰 장르" "공부되는 만화"라는 호평이 이어진다. 최씨는 "원고료 받는 정식 연재를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북에선 연인일 때 '친구'라고 해… 문화 차이 그린 '로동심문' 호평"서로 이해할 수 있는 場 됐으면"[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북에선 연인일 때 '친구'라고 해… 문화 차이 그린 '로동심문' 호평"서로 이해할 수 있는 場 됐으면"[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북한에서 이미 그림으로 한가락 하던 청년이었다. 평양무진고등중학교 4학년 최성국은 1994년 6월, 반미투쟁월간을 맞아 북한에 쳐들어오는 미군을 한국화로 그렸다가 생애 첫 '천재'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미술부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었죠." 1996년엔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 직원으로 선발됐다. 포카혼타스·라이언킹 등 미국 애니메이션을 흉내 내 수출하거나 '령리한 너구리' 같은 북한 TV용 만화를 제작했다.

"북에선 꿈의 직장이죠. 매달 흰쌀, 식용유, 설탕, 한우 1㎏을 줬거든요." 이런 대접도 외국인 직원에 비해 비참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의욕이 꺾였다. 방광염을 핑계로 2002년 촬영소를 빠져나왔다. 그 후 폐기된 컴퓨터를 재조립해 내다 파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중국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던 한국 드라마를 발견했다. 이걸 CD로 복사해 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200만원을 김정일에게 바쳤더니 '김일성 청년영예상'을 주더군요." 그러나 곧 보위부의 감시 대상이 됐고, 암거래가 발각돼 함경남도 리원으로 추방당했다. 2010년 9월, 그는 탈북했다.

한 달 뒤 남한에 도착한 그는 예상치 못한 고통과 마주쳤다.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특히 그를 미치게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남한의 웃음 코드였다. "나도 웃겨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솟았다. 이후 TV 개그 프로와 코믹 웹툰을 전투적으로 학습했다. 북에서 인정받은 그림 특기도 살리고 싶었다.

"웹툰에 '노동신문'이 등장하면 얼마나 웃기겠어요. 제가 겪은 실화를 남한식 개그로 녹이면 재밌어할 것 같았어요." 남한 단어 '친구'는 북한에선 남녀 사이일 경우 '연인'을 뜻한다. 이런 의사소통의 벽 때문에 주인공 영철이는 엉뚱한 가슴앓이를 한다. 북에서의 궁핍이 만든 습관도 소재가 된다. 국정원 교육 중 급식판 한가득 밥을 퍼담고 비닐봉투에 반찬을 숨겨가는 등 '웃픈' 현실을 담았다. "남북한의 문화 차이가 커 놀랍다는 댓글 반응이 많아요. 통일되면 난리 나겠다면서요. 근데 별문제 안 됩니다. 저도 1~2년 만에 극복했는걸요."

가끔은 댓글로 사상 검증을 당하기도 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향해 '개XX'라고 해보라"는 주문도 있었다. 최씨는 19일 웹툰 말미에 김씨 부자를 향해 '개XX'라 외치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댓글로 상처받진 않아요. 별별 죽을 고생 다했는데 댓글{C}이 대숩니까."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TV조선 '모란봉클럽' 등 북한 관련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매주 2회 유튜브 방송 '몰랐수다 북한수다'에서 북한의 실상을 전한다. "웹툰이나 방송은 남한 사람의 호기심도 충족해주지만, 탈북자들에겐 그 어떤 적응 매뉴얼보다 실용적"이라고 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場)이 됐음 좋겠어요. 웃어주시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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