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의 작가 루이제 린저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다. 통역과 안내를 맡은 북한 최고의 젊은 엘리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린저는 깜짝 놀랐다. 이들이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김일성을 만나 “젊은이들이 기본적인 세계문학도 몰라서는 곤란하다”고 충고했다. 이 때문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지시로 80년대 중반 세계 고전문학과 아동문학 작품들이 대거 번역 소개됐다.

▶그의 방문이 북한의 문학도들에게 잠시나마 자유세계의 공기를 느끼게 해주는 효과도 있었던 모양이다. 한 여류 탈북시인의 추억이다. “린저 같은 서방세계의 작가가 북한에 오면 우리는 ‘선물’을 받았다. 한동안 그들의 작품이 서가에 꽂히고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읽었다. 그때 우리는 신선한 문학적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자유를, 문학을 느꼈다. 그들이 떠나면 책은 곧 압수됐다.”

▶린저의 ‘북한 사랑’은 유별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김일성과의 염문설(?)까지 낳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야기’에서 북한을 사회주의 이상이 잘 실현된 곳으로 묘사했다. 북한에서 수용소는 물론 실업자·범죄·부정부패·마약·공해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지도자와 인민이 한 몸이 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썼다. 이 책은 80년대 우리 대학가에서 ‘북한알기’의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독일작가 한스 부흐는 이 같은 린저의 북한인식을 ‘서양이 동양을 오해한 대표적 사례’로 꼽으면서 “린저 같은 저명 작가가 ‘오해’를 한 것은 슬픈 일이다. 당시 린저는 일단의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의 전형이었다”고 지적했다. 서구 지식인들이 한때 스탈린·마오쩌둥·폴포트 등을 찬양했던 것처럼 린저도 나치정권의 ‘현명한 지도자’ 사상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아 김일성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나치정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자전적 작품들을 통해 개개인은 각자가 삶의 주인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웠던 린저가 만년에 전체주의 사회의 현실을 통찰하지 못한 것은 문학적 아이러니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생의 한가운데’를 벗어난 린저가 육신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오늘의 북한현실을 바라본다면 어떤 감회에 젖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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