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문이 북한의 문학도들에게 잠시나마 자유세계의 공기를 느끼게 해주는 효과도 있었던 모양이다. 한 여류 탈북시인의 추억이다. “린저 같은 서방세계의 작가가 북한에 오면 우리는 ‘선물’을 받았다. 한동안 그들의 작품이 서가에 꽂히고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읽었다. 그때 우리는 신선한 문학적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자유를, 문학을 느꼈다. 그들이 떠나면 책은 곧 압수됐다.”
▶린저의 ‘북한 사랑’은 유별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김일성과의 염문설(?)까지 낳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야기’에서 북한을 사회주의 이상이 잘 실현된 곳으로 묘사했다. 북한에서 수용소는 물론 실업자·범죄·부정부패·마약·공해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지도자와 인민이 한 몸이 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썼다. 이 책은 80년대 우리 대학가에서 ‘북한알기’의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독일작가 한스 부흐는 이 같은 린저의 북한인식을 ‘서양이 동양을 오해한 대표적 사례’로 꼽으면서 “린저 같은 저명 작가가 ‘오해’를 한 것은 슬픈 일이다. 당시 린저는 일단의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의 전형이었다”고 지적했다. 서구 지식인들이 한때 스탈린·마오쩌둥·폴포트 등을 찬양했던 것처럼 린저도 나치정권의 ‘현명한 지도자’ 사상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아 김일성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나치정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자전적 작품들을 통해 개개인은 각자가 삶의 주인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웠던 린저가 만년에 전체주의 사회의 현실을 통찰하지 못한 것은 문학적 아이러니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생의 한가운데’를 벗어난 린저가 육신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오늘의 북한현실을 바라본다면 어떤 감회에 젖을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