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미래다 -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5] 탈북민 학생 교육 지원부산 대안학교 '장대현학교'

48명 자원봉사로 학생 18명 맡아… 강의실은 시민 200명이 마련
"아이들 통일南北의 소중한 존재"
 

부산 강서구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장대현학교 1층에는 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학생 5명은 기타를 치며 "샘(선생님), 샘"을 외쳤다. "샘, 코드 누르는데 손가락이 아파요." "샘, 제 기타는 소리가 잘 안 나요." '기타 샘' 이근형(39)씨는 "고생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게 어딨어? 손가락을 세워 코드를 눌러야지"라고 했다. 이씨는 이곳에선 '샘'이지만, 밖에선 보험회사 직원이다. 그는 장대현학교가 개교한 2014년 3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에는 전임교사 4명 외에 이씨 같은 자원봉사 교사가 48명이다. '자원봉사 샘'은 음악·미술·컴퓨터 등 방과 후 수업뿐 아니라 국어·영어·수학 등 정규수업도 책임진다. 대부분 정교사 자격증이나 강사증을 가졌다. 이 학교 학생은 총 18명(14~24세). 학생 1명당 교사 수가 3명인 셈이다.
환하게 웃는 '장대현학교' 학생·선생님들 -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활짝 웃고 있다. 2014년 개교한 장대현학교는 탈북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적응을 돕는 대안학교다. 앞줄 맨 오른쪽이 이 학교 교장인 임창호 목사다. /김종호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환하게 웃는 '장대현학교' 학생·선생님들 -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활짝 웃고 있다. 2014년 개교한 장대현학교는 탈북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적응을 돕는 대안학교다. 앞줄 맨 오른쪽이 이 학교 교장인 임창호 목사다. /김종호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목사인 임창호(60) 교장은 2007년부터 탈북민을 돕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탈북민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탈북민 학부모와 면담해 보니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이 많았다"고 했다. 기존 탈북민 대안학교는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의 탈북민은 자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임 교장은 주변의 도움 덕분에 2014년 부산에 장대현학교의 문을 열었다. '장대현'이란 이름은 6·25 이전에 평양에 있던 교회에서 따왔다. 부모가 평북 출신이라는 익명의 독지가가 12억원 상당의 건물을 강의실로 기부하는 등 200여 명이 힘을 보탰다. 선생님 충원에는 부산 시민들이 나섰다. 전·현직 교사, 학원 강사, 회사원, 주부까지 탈북 청소년을 무료로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이들이 이 학교에 모인 이유는 '통일 한국 건설에 쓰임 받는 자가 되라'는 학교 교훈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논술을 가르치는 송진영(54·학원강사)씨는 "탈북 청소년들은 통일 후 남·북을 이어주는 소중한 존재가 될 것임을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 원어민 샘'인 루이스 갈로(58)와 리사 갈로(57) 부부는 미국에서 왔다. 목회자였던 이 부부는 북한 인권운동가인 수잔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로부터 '이 학교에 원어민 교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했다고 한다. 루이스씨는 "탈북 학생들은 북에서 미국인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배워서 그런지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리사씨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를 믿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중학교에서 26년 동안 사회를 가르쳤던 전직 교사 도상욱(63)씨는 학생들에게 "TV에 나오는 신용대출 광고 보고 돈 빌리면 큰일 나요. 집안 망해. 이자는 은행이 제일 싸요!"라고 했다.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학교 학생 18명 중 3명은 탈북과 관련 없는 '남한 학생'이다. 통일에 관심 있는 부모와 학생들이 스스로 입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중 한 명인 한예지(15)양은 "함께 공부해보니 말투만 조금 다를 뿐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학생회장이자 '왕언니'로 통하는 24세 강으뜸(가명)양은 북한에서 중국어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10년 전 탈북해 중국 식당에서 일하다가 재작년에 온 강양은 학교에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장그래(가명·16)양은 "변호사란 직업이 있다는 걸 한국에서 처음 알았다"며 "변호사가 돼서 통일 후 고향 양강도에 돌아가 억울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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