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역경 딛고 정착한 탈북민들, 대부분 작은 도움에서 출발
우리 사회서 조금만 손잡아주면 어엿한 일원으로 설 사람 많아
통일 후엔 고향으로 돌아가 멀어진 南北주민 연결 역할
 

서울 시내버스 6623번을 운전하는 유금단(46)씨는 북한에서 농사만 짓다가 2002년 탈북했다. 그녀가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일이나 막노동밖에 없었다. 유씨는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앞에서 토스트를 파는 박영호(27)씨는 북에서 영양실조로 죽을 뻔하다 2001년 형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다. 정부 지원으로 학업을 마치고 창업을 해보려 했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현대차그룹과 한국마사회가 탈북민에게 창업 자본과 장소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작년 8월 찾아냈고 지금은 '푸드트럭 사장님'이 됐다. 그는 "남한 사회에서 조금만 손을 잡아주면 어엿한 구성원으로 함께 설 수 있는 탈북민이 많다"고 했다.

 

 

“탈북민, 10년 무사고 버스 기사 됐어요” -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지난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조인원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탈북민, 10년 무사고 버스 기사 됐어요” -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지난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조인원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난 3월까지 입국한 탈북민은 2만9137명이다. 이 중 여성이 2만557명(77%)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녹아든 탈북민은 많지 않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민 403명을 조사해 올 3월 펴낸 '2015년 북한 이탈 주민 경제·사회 통합 실태'에 따르면 한 달에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탈북민이 57.8%, 100만~200만원 소득자가 29.7%다. 월 200만원 이상 버는 탈북민은 10%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탈북민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비율이 37.7%다. 일반국민의 수급 비율(2.6%)과는 격차가 컸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탈북민의 20.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자의 74.7%가 월 소득 150만원 미만이었다.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의 손광주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 안착한 탈북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북한)에 돌아가 남한에서 배운 것들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한다"며 "3만 탈북민은 통일 이후 남북의 멀어진 관계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2400만 북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남에 먼저 온 3만명의 탈북민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공간)다. 조선일보는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통일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일환으로 탈북민들이 어떻게 자유민주·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가를 고민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손 이사장은 "'고기 잡는 법(정착 방법)'을 배워야 하는 탈북민과 이를 가르쳐줄 우리의 단체·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개인들 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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