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탈북 소녀 이진화(10)양이 버스 안에서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환영 인파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金昌鍾기자 cjkim@chosun.com

어둠이 내리깔린 18일 오후 7시7분, 서울 시내 모처에 도착한 탈북자 25명이 정부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서울의 첫 밤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4일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돌진할 때와 달리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얼굴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들은 서울의 첫 밤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는 듯 밤 늦게까지 4층 건물 곳곳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에 앞서 이날 오후 5시21분, 인천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항 9번 게이트 앞 입국장에 선 탈북자 김향(16)양은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나이도 어리고 배운 것도 없고, 한국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그분들의 고마움을 갚기 위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고 싶어요.”
고아소녀인 김양은 지난 99년 먹을 것을 찾아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던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함께 온 탈북자 24명도 상기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은 채 “반갑습네다”를 외치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일행 중 막내둥이인 이진화(7)양은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소속 인권운동가 10여명이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아들고 “남한 오니 좋습네다. (비행기 안에서도) 안 무서웠어요” 하고 활짝 웃었다. 부모를 잃고 중국땅을 떠돌다 한국 땅을 밟은 고아 이선애(16)양은 취재진의 질문공세에 “(남한 오니) 좋아요”라며 웃기만 했다.


◇1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탈북자 일행 중 소녀들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鄭敬烈기자 krchung@chosun.com

탈북자들은 사흘간 머물렀던 캠프 아기날도를 떠나 이날 오전 10시쯤(현지시각)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륙을 10분쯤 앞둔 낮 12시30분 탈북자 이성(44)씨 부인인 김영희(40)씨가 딸 진화(7)양의 손을 잡고 맨 먼저 탑승했다. 나머지 탈북자들도 차례차례 올라타 비행기의 7열부터 10열까지 자리잡았다.

서울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들은 기대로 흥분한 표정이었다. 대한항공 승무원 오주연(27)씨는 “처음엔 긴장했지만 비행기가 이륙하자 많은 질문을 해왔다”며 “‘서울가면 복잡하지 않으냐’ ‘서울은 날씨가 추우냐’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기내에서 만난 탈북자 김명옥(39)씨는 “자유세계에 가족들과 함께 가게 돼 더 좋다”며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반드시 잘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최병섭(52)씨는 피곤한 표정이면서도 “고향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KE622편은 36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777기종으로, 25명 전원에게 비즈니스 좌석이 배정됐다. 이들의 입국 비용은 우리 정부와 유엔난민담당관실(UNHCR)이 각각 분담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UNHCR는 베이징 출발에서 필리핀 도착까지의 항공료 등을, 우리 정부는 필리핀 체류에서 서울 도착까지의 비용을 부담키로 했다.
/ 마닐라~인천국제공항=李光會특파원 santafe@chosun.com
/ 白承宰기자 whites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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