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6년 만의 노동당 대회서 빛나는 미래 보여주겠다 약속
그러나 北주민들은 강제 노역과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제재로 생계마저 위협받는 지경
먹고사는 문제에 분노한 민심을 이겨낼 권력은 없다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400만 북한 주민들이 요즘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모레(6일)부터 열리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 때문이다. 이 행사를 앞두고 주민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70일 전투'라는 이름 아래 주민들을 공사장으로, 탄광으로, 농장으로 몰아넣고 강제 노역(勞役)을 시키고 있다. 북한 권력이 주민들을 닦달할 때 꺼내 드는 게 '천리마 운동'이다.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리는 말과 같은 속도로 일하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천리마보다 강도가 10배나 센 만리마 운동을 내걸었다. '건성건성' 시간을 때우기 쉽지 않게 됐다.

북한이 노동당 대회를 마지막으로 연 것은 36년 전인 1980년이다. 북의 현 권력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이때 열린 6차 당 대회의 주인공은 김정은의 조부(祖父) 김일성이었다. 북은 이 당 대회에서 '김일성→김정일 권력 세습(世襲)'을 공식화했다. 김일성은 여섯 번이나 당 대회를 개최했다. 반면 김정일은 재임(1994~2011년) 중 이 행사를 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민의 의식주(衣食住) 개선 없이는 7차 당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을 의식해서다.

올해는 김정은의 집권 5년차다. 그는 아버지 김정일이 감히 생각도 못했던 당 대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그는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이번)당 대회는 휘황(輝煌)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밝고 빛나는 북한의 미래에 관한 구상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당 대회는 김정은의 예고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정은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

김정은이 이번에 당 대회를 여는 이유를 굳이 하나만 꼽자면 '셀프 대관식'을 갖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정상적 사고(思考)를 하는 집권자라면 이런 행사를 앞두고서는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살 만한 일은 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휘황한 설계도'라는 말을 내놓은 지 닷새 만인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한 달 뒤에는 북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중국이 반대하는데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다. 그 후로도 위험천만한 북의 도발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유엔 안보리가 지난 3월 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對北) 제재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은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독자적 대북 제재까지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단행했다. 김이 약속했던 휘황찬란한 미래는 간데없고 오히려 북(北) 주민의 삶만 더 어려워졌다. 36년 전 6차 당 대회 때는 소련과 중국의 최고위급 사절을 비롯해 118개국 대표단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외빈(外賓) 없는 나 홀로 행사'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김정은과 그의 수하(手下)들이 제 발등 찍는 일만 골라서 해온 결과다.

김정은 정권은 최근 그렇지 않아도 힘든 주민들에게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치고 있다. 얼마 전 북한 노동신문은 "혁명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며 "풀뿌리를 씹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사고에 따른 부담을 주민들에게 떠넘긴 꼴이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지금 '당 대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한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느라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장마당 활동 같은 것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대(大)홍수와 뒤이은 기근 사태로 수백만 북 주민이 북한을 등졌다. 이때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대기근 이후 북 주민들 사이에서 자구책으로 등장한 게 장마당을 비롯한 사(私)경제다. 북한 권력은 주민을 먹여 살릴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에 이 흐름을 방관했다. 2009년 화폐 개혁을 통해 장마당 경제에 제동을 걸려다가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민란(民亂)이라도 날 듯 분노가 들끓었다고 한다. 결국 북한 정권은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에게 실정(失政)의 모든 책임을 떠넘겨 그를 총살하는 것으로 주민들을 달랬다.

올해 당 대회와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 제재로 북한 경제를 지탱해온 '장마당 경제'라는 버팀목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다른 건 몰라도 먹고사는 문제가 위협받는 것에 대해선 참지 못한다"고 했다. 먹고사 는 문제에 분노한 민심을 이겨낼 수 있는 권력은 없다. 핵·미사일 도발밖에 알지 못하는 30대 초반 독재자의 위험한 폭주(暴走)가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기적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임기 말로 접어들고, 미국은 정권 교체기다. 지금 한반도는 또 한 번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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