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안보 '美우선주의' 선언
"나토·아시아동맹 부담 再논의… 美이익 반하는 어떤 협정도 거부… 내가 대통령 되면 IS 사라질 것"
美언론·공화 내부, 일제히 비판 "외교를 TV쇼로 여기는 발상"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에 바짝 다가선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27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자신의 외교·안보 구상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발표했다. 첫 공약 설명회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완벽하고 총체적인 재앙'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한 묶음으로 엮어 비난했다.

그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신(新)고립주의'로 전환해 해외 군사 개입을 배제하고, 동맹국에 대해서는 상호주의를 요구하겠다는 대원칙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사라지고, 미국의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제대로 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날 동맹국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가시키고, 비행기와 미사일, 선박 등에 수조달러를 지출하는데, 우리가 지켜주는 나라는 정당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며 "방위 비용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아시아 동맹국과 개별 정상회담을 열어 금융적 책무 재균형(방위비 부담) 문제를 비롯해 나토의 임무 전환 등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한국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유세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예로 들면서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했었다.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많이 내지 않으면 주한 미군을 철수하고, '핵우산'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핵(北核)과 관련해 트럼프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핵 능력을 키우는데도 오바마는 무기력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며 "북한의 생명줄을 쥔 중국에 대해서도 제어 수단을 쓰도록 하기보다는 중국이 미국인의 일자리와 재산을 뺏어가게 놔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통제 불능의 북한을 제어하도록 우리가 가진 경제력으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유무역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북미 자유무역협정은 절대적인 실패로, 우리는 다시는 잘못된 세계화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어떤 협정도 맺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과의 무역 적자 해소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방 안보 체제의 중심축인 나토를 불신하고 동맹의 가치를 깎아내린 것은 공화당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 상원 의원은 "로널드 레이건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판"이라며 "어떻게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지, 우리가 직면한 각종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에 대해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짐 길모어 전 버지니아 주지사는 "그의 연설에는 모순되는 내용이 아주 많다"며 "연설의 상당 부분이 미군 철수, 미국 우선주의, 개입 자제 등인데, 개입 없이 어떻게 IS를 바로 없애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부분 혹평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발언은 그가 출연했던 리얼리티쇼 테이블에 앉아 미국의 보호와 교역, 우정의 대가로 더 많은 돈과 군대,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모습이 연상된다"며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박차고 나가야 한다고 트럼프는 말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접근이 TV쇼로는 좋을지 몰라도 각국이 저마다 의제가 있는 게 현실 외교"라고 했다. USA투데이도 "트럼프의 세계관은 그가 말만 하면 그대로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라며 "근거도 없이 '내가 대통령이 되면 IS는 아주 신속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고 그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BBC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는 '무엇(what)'만 가득하고 '어떻게(how)'는 몹시 부족했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그가 발표하지 않은 내용에 주목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겠다는 과거 발언이나 '멕시코 장벽' '나토 탈퇴' '이란 핵 합의 파기' 등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장벽 설치 등 지금까지 해오던 핵심적인 주장을 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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