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이 어제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은 뒤 경남 김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지난 29일엔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문병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도 새해 초 현충원을 찾은 뒤 이희호·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도 그 며칠 뒤 똑같은 순서를 밟았다. 야권에선 누구든 새 지도부가 구성되거나 정치적 고비가 오면 김·노 전 대통령 묘역과 함께 그 부인들까지 찾는 것이 공식화되다시피 했다.

야당 인사들이 야권 출신 대통령들을 기리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야권의 두 정당이 'DJ 정신'이니 '노무현 정신'이니 따져가면서 이전투구식 주도권 다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 나라 정치 수준에 절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은 이희호 여사를 찾은 뒤 누가 몇 분을 더 만났느니, 독대를 했느니 못 했느니를 놓고 다퉜다. 이어 이 여사 발언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불거지더니 면담 녹취록까지 나왔다. 이걸 놓고 김 전 대통령 아들과 동교동계 사람들까지 얽혀 '김심(金心)은 우리 쪽' 같은 저급한 논쟁을 벌였다. 세상을 뜬 전직 대통령들을 놓고 그들 마음이 자기편이라고 우김질하는 정당들이 우리와 국민소득이 비슷한 다른 민주국가들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선거 앞에서 전직 대통령이나 총리 미망인들을 이렇게 자주 찾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야당의 이런 행태는 북한 '유훈(遺訓) 정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뿐이다.

야당 지도자들이 전직 대통령의 미망인들을 번질나게 찾으면서도 오늘 이 시점 대한민국이 결판지어야 할 국정 현안들에 대해 그때그때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9일 기업구조조정지원을 위한 원샷법과 북한인권법을 처리하겠다고 했던 여당과의 합의를 본회의 통과 직전에 깨버렸다. 이걸 주도한 사람이 김종인 위원장과 박영선 비대위원이다. 이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던 재계는 환영 성명까지 준비했다가 망연자실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야당이 나아갈 방향으로 "국민의 변화에 적응하는 정당" "현상을 해결하는 정당"을 들었다. 말과 실제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나라 경제는 미래는커녕 당장의 먹거리가 소진되고 있는데도 딱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청년 일자리 문제도, 복지 재원 조달도 절벽에 부닥치는 한계상황이 닥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야당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민 다수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경제 위기나 테러 위협에 아무 대안 없이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정말 '경제 포기·안보 포기 정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인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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