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지 말라"는 中 관영 매체, 한반도를 제후국으로 내려다보는 제국의 오만함 역력해
긴급 통화조차 마다하는 中 앞에서 "최상의 韓·中관계" 자랑하는 정부… 비상한 결단과 지혜 필요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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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드로 중국을 핍박해서는 안 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27일자 사설에서 뱉은 일갈(一喝)이다. 4차 북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한국 배치를 '검토한다'고 하자 '한국은 너무 제멋대로(任性) 굴지 말라'며 폭언에 가까운 경고를 날렸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한다면 '그 때문에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며 으름장이다.

중국인들이 감정 서린 직설(直說) 대신 은근한 계모책략(計謀策略)을 숭상한 점, 즉 넓고 깊게 생각하는 계략을 삶의 지혜로 여겨왔다는 점에서 환구시보 사설은 매우 예외적이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직정적(直情的)인 한국인 상대의 맞춤 전략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노골적으로 얕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4차 북 핵실험 직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강조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식상한 모범 답안과는 정반대인 환구시보의 표현법은 상대방을 위협하면서 어르는 중국 특유의 전술 담론이다.

환구시보 사설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힘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국제 정치적 계략에서도 우리를 낮춰보는 중국의 따가운 시선을 아프게 느껴야만 한다.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고 있다"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허언(虛言)이 특히 뼈아프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국방에서 주관적 소망 사고를 앞세우는 것보다 위태로운 일도 없다. '최상의 한·중 관계'를 자랑해 온 박근혜 정부의 자화자찬은 한·중 정상 간의 긴급 통화조차 마다하는 노회한 중국 앞에서 순식간에 빈말로 전락했다.

중국이 한국을 업신여겨온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대중 관계에서 저자세로 일관한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대한민국을 일격에 초토화할 북한 핵미사일에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전무한 건 참으로 치명적인 생사 문제다. 현실이 이럴진대 한국 처지에서는 사드뿐만 아니라 핵 개발 방안까지라도 급박하게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제멋대로 까불지 말라'며 우리를 겁박하는 중국 관영 매체의 발언에는 한반도를 과거의 제후국으로 내려다보는 '제국 중국'의 오만함이 역력하다.

지금은 한국 외교와 국방의 총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책 오류를 인정하고 북핵 보유라는 현실에 입각한 국가 대전략으로 승화시킬 기회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악화일로인 북핵 위기 와중에 역대 한국 대통령과 외교·국방 전문가 집단의 소망 사고가 은폐해왔던 '한반도 진실의 순간'이 폭로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반도 전략 게임의 핵심적 진실은 두 가지다. 대화나 교섭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제국으로서 중국이 사회주의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관여 정책과 압박 정책 모두 핵무장을 향한 북한 김씨 세습 체제의 집념을 꺾는 데 실패했다. 김정은 집단에 유일 체제 보위와 핵 보유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핵 없는 한반도'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가깝다. 설령 평화협정과 미·북 수교가 이루어진다 해도 북한은 일방적 핵 폐기 대신 미·북의 상호 핵 군축을 요구하는 대가로 상당한 자체 핵전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결국 핵 보유국 북한의 존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의 엄연한 현실이며 미래에도 변함없는 상수(常數)다. 너무나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되고 만 한반도 통일의 도전은 자체 핵무장까지를 포함하는 우리의 비상한 결단과 지혜를 요구한다.

난세에 대처하는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같은 전략 전술을 깊숙이 생활화한 것이 중국 문화다. 진시황이나 마오쩌둥처럼 얼굴이 두껍고 속은 시커먼 후흑학(厚黑學)의 달인들이 중국사의 영웅호걸로 등장하는 이유다. 따라서 중국의 속내를 날것으로 드러낸 환구시보는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다. 한국이 이끄는 통일 한반도를 대국굴기의 심장부를 겨냥한 칼날로 여기는 건 공세적 제국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 탓이 크다. 어엿한 주권국인 대한민국을 중국 국가 전략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6·25전쟁 한 번으로 족하다. '한국은 사드로 중국을 핍박하지 말라'는 중국의 말은 전략적 이유로 북한 핵무장을 방조하는 제국의 거만한 궤변일 뿐이다. 진실은 정반대다. '중국은 사드를 핑계로 한국을 겁박하지 말라'고 우리가 외쳐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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