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전 의원이 12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권 전 의원은 60년에 가까운 정치 인생 동안 제1 야당의 틀을 벗어난 일이 없는 사람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86세 고령(高齡)의 그가 탈당까지 했다는 것은 지금의 더민주에 그만큼 많은 문제가 누적돼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 전 의원은 회견에서 탈당 사유로 지금 야당으로는 정권 교체의 희망이 없다는 점, 당 지도부가 폐쇄적으로 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친노(親盧) 패권'이라는 말도 썼다. 이전 탈당자들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탈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친노와 운동권 연합 세력이 당내 반대자들마저 배타하고 자기만 옳다는 식의 행태를 보인 것이 이런 상황을 불렀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더민주에서는 곧 더 큰 규모의 탈당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과 전남 지역구 의원 몇 명이 이미 탈당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더민주에서는 과거 당의 주인이었던 동교동계, 현재 비주류인 안철수·김한길계가 모두 나가는 완전한 분당(分黨) 수준이다. 친노·운동권과 호남의 오랜 동거 관계도 끝난다.

더민주는 최근 10~20년 사이에 두 번이나 정권을 잡았던 당이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1980년대식 낡은 이념과 타성에 젖어 강경 투쟁 일변도의 정치를 하느라 스스로 민심에서 멀어졌다. 저성장과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4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보를 튼튼히 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어깃장만 놓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갇혀 그 뒤를 이을 사람이나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선거마다 졌던 것은 그 결과다.

지금 호남 지역에선 수십년간 한 개의 정당에 표를 몰아주던 오랜 정치 행동이 깨지려 하고 있다. 더민주는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크게 밀리고 있고, 이 외에도 여러 군소 신당 흐름이 각축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 등 몇 명은 무소속 연대를 구축하려는 조짐도 있다. 오분육렬(五分六裂)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다. 하지만 야당의 해묵은 껍질이 야당의 본거지에서부터 해체되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과 한국 정치 전체의 발전에 오히려 약(藥)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 이 나라와 이 시대는 기존 야당식 투쟁 정치에 신물이 났다. 그렇다고 지역주의 정당의 탄생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시대적 과제를 미리 읽고 국민 입장에서 행동하는 유능한 야당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해지고 있다. 난립하는 야당들의 생존 여부는 누가 시대 변화에 부응해 거듭나고, 누가 안주하거나 퇴행하느냐에 달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