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논설위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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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대통령 담화가 있다. 대통령이 해야 할 말도 있고, 국민이 듣고 싶은 말도 있다. 김정은은 시진핑, 오바마, 아베, 푸틴, 그리고 우리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악수를 나눠본 일차적 교감은 제로 상태다. 신뢰가 발아된 적이 없는 맨땅이다. 저들은 평양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울타리에 갇혀 판단한다. 지난 20년 핵 도발로 키워온 국제적 핵정치(nuclear politics) 공학에 따라 일을 저지르고 본다. 3대 세습 체제답게 선대가 물려준 유훈도 영향을 미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핵은 포기하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평양의 도발을 국제사회에 먹히게 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소란스럽게 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상대도 자신처럼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오류를 범한다. 평양은 주변국들이 갖고 있는 이런 오류를 교묘히 역이용하면서 자신의 도발 정치를 펼친다. '도발'이 '합리'를 이긴다. 단기간에는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내일 담화에서 어디를 향해 말에 힘을 줄지 짐작을 해본다. 먼저 김정은에게 다짐을 둘 것이다. 지난 6일 저들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때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대통령은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다. 핵실험은 수요일에 있었고, 주말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다시 시작됐으며, 일요일 점심때 미국이 가진 최강 전략 무기인 B-52 전폭기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고 괌으로 돌아갔다. 어제는 개성 공단 인원도 최소로 줄이겠다고 했다.

대통령 말씀을 업수이 여기는 건 아니지만 '상응하는 대가'가 이런 수준이라면 민족 멸절의 위협을 가하는 북한 핵 도발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1차, 2차, 3차 핵실험을 했을 때도 우리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 백악관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핵실험 10년이 흘렀다. 보복은 즉각적이어야 한다. 특히 합리의 오류를 틈타 도발을 일삼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응징해야 알아듣는다. 보복은 세 곱절 이상이어야 한다.

히로시마 원폭 이후 70년 동안 핵 보유국들은 핵 정치를 말로 해왔다. 핵은 불사용 무기였다. 그 때문에 북한은 대북 핵 보복도 흐지부지 말잔치로 끝날 것으로 계산했고, 일정 부분 들어맞았다. 이 폐단을 끊어내려면 보복이 상상을 초월해야 한다. 지난 일주일 대한민국과 주변국 움직임, 국제사회 공조, 유엔 안보리 결의가 만약 평양이 예상했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 조치는 하나 마나다. 평양은 몇 수를 내다보고 억지 수를 둔다. 따라 하면 안 된다. 악동(惡童)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보복 강도(强度)가 악동이 가진 상상을 초월해야 한다. '뜨거운 맛'이 된다.

확성기와 무력 시위는 저들이 예상하고 있던 레퍼토리다. 요 근래 몇 년 가까워졌다고 중국이 우리 편은 아니다. 어제오늘 보듯 중국은 역시 북한 혈맹이다. 아니 중국은 한반도 평화 못지않게 대미(對美) 전략적 차원에서 핵 정치의 주도권 확보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합리적 판단을 해야만 하는 국가의 대통령이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핵 확산 금지나 핵 군축(軍縮)은 한반도 주변과는 먼 얘기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 담화에는 국지적 핵 군비 경쟁 시대라는 현실 인식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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