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의 사망으로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남북 차관급 회담 개최 등 큰 틀에서 '대화 국면'을 이어가던 남북 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30일 "김정일 정권 때부터 9년 가까이 대남 정책을 총괄해 오던 김 비서가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당분간은 남북대화 중단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관계 개선을 향해 나아가던 속도도 지금보다는 느려질 가능성이 있다.

국책 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김양건은 연륜과 경험을 토대로 김정은에게 큰 신뢰를 받으며 자신감 있게 대남 정책을 건의하고 펼쳐 왔다"며 "그러나 이제는 그만큼 과감하게 김정은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주요 정책 결정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대남 정책의 큰 방향 전환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의 모든 정책은 기본적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결정하기 때문에 김양건이 죽었다고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도 "김정은은 '병진' 노선에 따라 남측과 대화를 통해 경제적 실리를 얻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며 "이런 기조는 김양건의 후임이 누가 되든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건의 후임은 우리 정부로서도 관심사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다. 원 부부장은 한때 숙청설이 돌았지만 이번 김양건 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원 부부장은 작년 2월 남북 고위급 접촉 당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상대였다. 원 부부장보다 장의위원 서열에서 앞선 김완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겸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김양건 후임으로 거론된다.

정성장 실장은 "김완수는 남 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의장 등을 맡아 대남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했다. 이 밖에 통전부 내 '성골(聖骨)'로 꼽히는 맹경일(조평통 서기국 국장) 부부장도 후임으로 꼽힌다. 김양건의 죽음이 일부 추측대로 강경파에 의한 타살일 경우 국가안전보위부 등 강경파가 대남 라인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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