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적응, 무관심 속 자살·자살기도 잇따라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1. 북한을 탈출, 한국에 10년 넘게 산 A(34·여)씨는 지난 9월 추석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이혼한 후 직접 아들을 키우기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적응하기 쉽지 않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 북한을 탈출한 B(55)씨는 러시아를 거쳐 한국에 왔다. B씨는 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린 데다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자 우울증을 앓았다. 수면제에 의지해 잠을 청하던 B씨는 결국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탈북자 지원센터에서 이를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한국사회에 잘 녹아들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분단된 지 70년이 지나 남북한의 문화에 이질적인 요소가 많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자격증과 인맥 등 이른바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문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새터민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새터민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유다.

A씨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단초가 된 것은 남북한의 이질적인 문화였다. 전자업체에 입사한 A씨는 북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외래어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직장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살았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탈북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은 "북한에서는 명령체계가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직장에서 시키는 것만 해야 한다"면서 "(새터민들이)눈치껏 알아서 해야 하는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과 결혼한 새터민들이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이혼에 이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탈북자 D(45·여)씨는 1년 간의 연애를 거쳐 남한 남성과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남편의 잦은 회식을 이해하지 못해 숱하게 싸우다 결국 남남이 됐다.

새터민의 적응을 돕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 상담사인 서향남 팀장은 "새터민 남한인 커플 10쌍 중 8~9쌍은 술자리 문제로 이혼상담을 하러온다"며 "북한에는 유흥가도 없고 밤 문화도 전무해 (새터민이)술자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도 한국사회 적응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8년 된 박다연(29·여)씨는 "항공사 근무를 꿈꾸며 힘겹게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북한사람은 보안 문제 때문에 합격시켜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같은 민족이라면서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당할 때 서러웠다"고 했다.

실제로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남한 생활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한 새터민 중 41.9%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각종 편견과 차별'을 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또 응답자의 27%는 '남한 사회문화에 적응이 어렵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새터민이 한국사회에 제대로 녹아들려면 체계화된 사회화 교육과 일관적인 탈북자 지원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승미 한국자유총연맹 강원도지부 과장은 "정부에서 새터민들을 지역에 전입시킨 후 각종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의무교육을 수료하도록 해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짚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정부는 한민족이지만 세계관이 다른 새터민에게 무조건 직업교육만 하고 있다"며 "충분한 사회화 교육이 없다면 새터민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통일시대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희윤 피랍·탈북 인권 연대 대표는 "정부의 탈북자 지원 정책이 계속 바뀌면서 탈북자들에게 혼란과 불안감만 안겨줬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정부는 탈북자 지원 정책에 원칙을 세워 탈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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