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했던 25명의 탈북자가 제3국으로 추방되는 과정을 거쳐서라도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런 결과다. 중국과 스페인·필리핀 등 관련국들의 신속하고 인권지향적인 결정은 한국민들의 감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정부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한 이 같은 평가와는 별개로, 우리는 이제야말로 한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국제사회가 중국 내 탈북자 문제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지혜와 뜻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탈북자 문제가 제기되고 이들의 참상이 알려진 지 10년을 넘기고 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

현 정부는 그간 탈북자 문제에는 ‘조용한 외교’가 최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 과연 ‘외교’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번처럼 사건화되는 경우가 아니면 정부차원의 노력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가 늘고 있는 것도 각자의 자구노력에 의한 것이지 정부의 배려 덕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 정부가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면, 그동안 탈북자를 외면한 대가로 남북관계에서 이룬 게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을 국제법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해 이들의 중국 내 체류나 한국행 등을 보장해 주는 것이고, 현 정부의 노력도 이점에 집중돼야 한다. 이것이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라면 차선으로 중국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하에 탈북자들의 신변과 생활을 좀더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다양한 조치들이 강구돼야 한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체제의 안정성과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한국의 대북·통일전략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 해법이 단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는 것은 민족의 도덕성이나 인권차원에서 용납하기 어려우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키울 뿐이다. 수십만 탈북자들이 처한 당장의 처절한 절망상태를 외면한 채 민족의 화합과 교류, 나아가 통일까지 운위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위선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중국정부에 당장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번 일로 인해 작년 6월 장길수 가족 사건 이후처럼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일만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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