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20일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자위대의 북한 진입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이른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헌법상 우리 영토로 (자위대가) 북한에 들어갈 때는 우리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는 유사시 자위대가 북한에 들어갈 경우 우리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한 장관은 뚜렷하게 이의를 제기하지도, 논의를 이어가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 발언을 아예 공동 보도문에서도 뺐고, 회담 후 브리핑에서도 일절 밝히지 않았다. 일본 방위성이 이날 밤 일본 언론에 이 내용을 흘리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자위대의 북한 진입 문제는 우리의 영토주권(主權)뿐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통제·관할권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를 통과시킨 일본이 한반도 문제와 자위대의 역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국토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한 국방부 장관은 그런 중요한 발언에 대해 그냥 흘려보냈고,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국방부는 21일 "나카타니 방위상이 그런 발언을 했지만, 방점은 한·미·일 협의가 필요하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 발언은 공개하지 않기로 양측이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일본 방위성이 이 같은 합의를 깬 것은 분명한 반칙이지만 중요한 발언을 빼기로 합의해준 국방부도 큰소리칠 처지가 못 된다.

무엇보다 한·일 군사협력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민감한 부분을 빼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려 했던 국방부의 태도가 문제다. 국방부는 더구나 일본의 이 같은 입장을 이번 회담 전에 이미 통보받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한국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어떤 식으로든 밝히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안이하게 대처하다 일본에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이런 일이 쌓이면 한·일 간에 꼭 필요한 안보상 협력도 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군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과정에서 미국의 핵심 기술 이전이 가능한 것처럼 부풀리고 기술이전 불가 통보를 받은 사실을 5개월간 숨겼다. 한·일 군사회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상황에서 우리가 헌법 조항에만 기초해 북에 대한 주도권을 관철시키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이 있긴 하다. 하지만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 3조는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총회의 결의 제195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방장관이 이를 근거로 한반도 유사시 주도권과 통제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왜 일본에 말하지 못하는가.

22일부터 한·미·일 안보 현안 실무회의가 도쿄에서 열린다. 국방부는 한반도 유사시 대응 플랜과 전략을 갖고 자위대와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분명하게 통보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 불신을 자초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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