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탈북자들이 서울에 오기에 앞서 잠시 머무르는 단골 ‘제3국’으로 자리잡았다. 15일 주중(駐中) 스페인 대사관을 떠난 25명의 탈북자들은 필리핀에서 여장을 풀었다. 중국 내 외교공관에서 ‘한국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온 사례는 지난 97년 주중(駐中) 한국 총영사관으로 뛰어들었던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 비서 일행, 작년 6월의 탈북 장길수 가족에 이어 이번이 3번째이다.

필리핀이 인기 중간기착지로 등장한 이유는 일단 ‘보안’시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과거 대규모 미군 주둔 경험을 가진 필리핀에는 탈북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배후시설이 가장 훌륭하다는 평이다. 또 필리핀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탈북자들의 임시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도 꼽힌다. 이 때문에 중국이 탈북자들의 난민지위를 인정치 않고 불법체류자의 국외추방 형식을 취할 때 가장 용이한 대상국가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필리핀 체류 기간은 각각 다르다. 황 전 비서는 고령이라는 점과, 한달에 걸친 중국 내 농성으로 심신이 지쳐있고, 안전문제 등으로 97년 3월 19일 필리핀에 도착해 4월 20일 서울에 왔다. 그러나 길수 가족의 경우 필리핀 도착(2001년 6월 29일) 다음날 서울로 출발했다. 이번 25명의 탈북자들도 길수 가족의 선례를 따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한국행에 오를 전망이다.
/朴斗植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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