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14일 진입한 탈북자 25명은 27시간만인 15일 오후 필리핀행 여객기에 탑승함에 따라 서울행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오는 17일께 꿈에 그리던 서울 땅을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지난해 망명 신청 나흘만에 서울에 도착했던 장길수군 가족에 비해 더 신속하게 한국으로 오게 됐다.

한때 북한의 노동당 당원이었다고 말하는 50대의 최병섭씨 등 여섯 가족과 개인 3명(성인 14명, 10대 11명)으로 이뤄진 이들은 전날 오전 11시 관광객 차림으로 중국 공안을 밀치고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진입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외신 기자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면 자결하기위해 독약까지 품고 있다는 이들의 절박한 사연을 전세계에 타전함으로써 탈북자들의 운명은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각될 수 있었다.

식량난이 극심했던 지난 95년 이후 북한을 탈출했던 이들의 사연은 아직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외국 대사관을 통한 한국행은 지난해 가을께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인 활동가에 의해 구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초 탈북자 25명이 구성되면서 거사 장소는 당초 목표로 삼았던 베이징의 독일 대사관에서 중국 공안의 경비가 상대적으로 다소 허술한 스페인 대사관으로 바뀌었다.

거사 과정에서 북한에서도 구호활동을 벌였던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와 일본의 민간단체인 북한난민구원기금의 관계자, 그리고 한국에서 건너온 민간단체 활동가 등이 가세해 성명서와 관련 자료 등을 영어로 작성하는데 도움을 제공했다.

하지만 `혈맹'을 내세우는 북한을 의식해 난민 지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순회 의장국인 스페인의 외교 관할권, 그리고 동포의 애절한 사연을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서로 엇갈렸다.

특히 중국 당국은 길수군 가족에 이어 이번 사건이 향후 탈북자 처리의 선례로 남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한편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일본, 그리고 유럽 국가 등의 탈북자 지원 민간 단체의 활동에 대해 강한 거부 반응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측은 중국 당국이 이들을 난민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제3국으로 추방하는 형식으로 어렵사리 절충점을 찾는데 성공했다. 탈북자 25명이 활보할 수 있는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일단 만족한 셈이다. 중국 당국이 이들을 제3국인 필리핀으로 추방하는 사유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서방 세계의 여론을 크게 의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서 첫날밤을 지낸 이들 탈북자 25명은 의사 검진 결과 1명의 건강상태가 나쁘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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