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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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국을 다루는 방법 중 하나는 '충격요법'이다. 국가적 경사나 국제행사로 중국인들 마음이 들떠 있을 때 북한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을 터뜨린다. 2010년 상하이(上海) 엑스포 개막 한 달 전 천안함 폭파, 2013년 초 시진핑(習近平) 주석 취임을 앞두고 단행한 3차 핵실험이 그랬다.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을 꼭 한 달 앞두고 지난 4일 감행한 DMZ 목함지뢰 공격도 이와 같다. 북한의 도발은 한국의 반발을 불러와 한반도 긴장도를 일순에 끌어올린다. 압록강 건너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중국의 잔치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돌발 사태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다.

북한이 충격요법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정은이 원하는 바를 시진핑 주석이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신형 전투기 등 무기 장비와 경제적 지원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양국 관계는 냉각의 연속이다. 김정은은 2011년 말 아버지 김정일 사망 이후 4년 가까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이나 리커창 총리도 마찬가지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와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 사이 시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은 다섯 차례 만났다.

최근 시 주석의 행보를 보면 김정은에 대한 압박을 늦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 주석은 지난달 하순 옌볜 조선족 자치주와 랴오닝성을 방문하는 중간에 창춘(長春)의 제16집단군(軍)을 찾았다. '장백산 호랑이부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부대는 6·25에 참전했으며 현재는 북한을 전담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시 주석은 부대 지휘부에 '동일하지 않은 작전임무(不同作戰任務)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동일하지 않은 작전'이란 돌발사태, 곧 북한 급변사태를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김정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군사작전을 벌일 수 있다는 암시다.

바로 이런 시기에 터져나온 북한의 지뢰 도발은 한국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중국 시진핑 정부에 대한 도발의 의미도 띠고 있다. 시 주석의 압박에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기싸움인 셈이다. 중국의 한 북·중 관계 전문가는 "현재까지 시진핑의 압박이 김정은에게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최근의 남북 갈등이 지속됐더라면 박 대통령의 방중은 어려워지고 중국의 기념행사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북한의 충격요법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흔드는 비수(秘手)다.

이런 점에서 중국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력이 증대될수록 북한은 중국 영향권에서 멀어지게 된다. 핵을 가진 북한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미국이나 일본과 손잡을 수 있고 심지어 대중국 적대정책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을 중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냉전적 사고가 설 자리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중국은 이제 '북한 리스크' 관리방안을 마련할 때가 왔다. 오는 9월 3일 전승절 기념행사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마음을 터놓고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이 얘기할 좋은 기회이다. 한국 정부도 중국에 제시할 '전승절 솔루션'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중국 역시 한반도 평화 안정 체제를 위해 누구와 손잡고 어떻게 풀어갈지 '전략의 전환'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당장 북한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북한을 다룰 수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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