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지뢰 도발과 관련한 남북 합의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북측'이 주어(主語)가 된 유감 표명은 매우 드물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북이 유감을 표명한 것을 두고 도발을 시인하고 사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합의문 문면상으로 보면 북의 유감 표명이 마치 제3자가 병문안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협상장에 나왔던 북의 황병서는 합의 후 북 TV에 나와 지뢰 도발에 대해 "남측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고 전면 부인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북 집단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달아 대북(對北) 확성기 방송을 중단키로 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북 권력 집단이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며 그 수단으로 대북 확성기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 합의로 북이 어떤 식으로든 '비정상적 사태'를 일으키면 언제든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이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선 사실상의 재발(再發) 방지 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북이 정말로 지뢰 도발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합의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은 완전히 잡아떼고 우리는 또 당했다'는 식으로 이번 합의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과대평가나 자화자찬은 금물이다.

남북은 당국 간 회담 개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별도 메시지에서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남북이 합의한 구체적 사업들이 후속 회담 등을 통해 원활하게 추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당국 간 회담을 정례화·체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화 분위기는 이어져야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북이 천안함 폭침을 시인·사과하느냐로 모아지게 될 것이다. 북이 2010년 천안함을 공격해 46명의 무고한 우리 병사를 죽인 뒤 정부는 5·24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5·24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는 남북 교류를 확대할 수 없는데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의 시인·사과 없이 정부가 이 조치를 해제해버린다면 우리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북이 이번 남북 협상 과정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했다고 한다. 남북 합의 분위기를 타고 천안함 폭침을 어물쩍 넘긴 다음 금강산 관광으로 다시 달러를 챙기겠다는 뜻이다. 북이 더 이상 남측에 도발과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아니면 대북 확성기로 인한 위기만 모면하려 한 것인지는 곧 부각될 수밖에 없는 천안함 문제에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북은 작년 2월 이산가족 상봉을 하던 중에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장거리 로켓과 핵개발을 멈출 리도 없다. 남북 대화는 이어가야 하지만 과도한 기대로 판단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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