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송 '리얼DMZ 프로젝트 2015']

군화에 묻은 흙 모아 만든 정원, 청심환 패러디한 軍心丸 팔기도
터미널선 '통일 국수' 퍼포먼스 "동송,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

독일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이었지만 예술가들에겐 평화의 메시지를 알리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화폭이었다. 장벽이 무너지기 전 키스 헤링(미국), 드미트리 브루벨(러시아), 티에리 누아르(프랑스) 같은 유명 작가가 장벽에 그림을 그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분단의 비극을 알렸다. 한반도를 둘로 댕강 나눈 DMZ(비무장지대)가 우리에겐 베를린 장벽 같은 공간이다.

몇 해 전부터 DMZ를 무대로 한 예술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중 지난 1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에서 시작한 '리얼디엠지 프로젝트 2015'(23일까지)는 일회성이 아니라 4년간 꾸준히 해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리얼디엠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로 국내 대표적 미술계 인사 중 하나인 김선정씨가 이끄는 '사무소'에서 2012년 처음 시작했다. 동송읍에서 만난 김씨는 "할아버지가 전쟁 중 납북돼서 냉전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며 "일반인들은 잊어버렸거나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는 DMZ를 예술의 무대로 끌어내 우리 현실을 알리고 싶었고 애초 최소 10년은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①제분소 외벽에 설치된 진희웅의 작품‘정말 다 괜찮을거야’. ②‘군심환’이란 이름의 환약을 파는 퍼포먼스를 하는 정원연 작가. ③김이박 작가가 군인들의 군화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씨앗으로 만든‘이사하는 정원—DMZ’. ④동송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관객에게‘통일 국수’를 말아주는 유목연 작가. /사무소 제공·김미리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①제분소 외벽에 설치된 진희웅의 작품‘정말 다 괜찮을거야’. ②‘군심환’이란 이름의 환약을 파는 퍼포먼스를 하는 정원연 작가. ③김이박 작가가 군인들의 군화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씨앗으로 만든‘이사하는 정원—DMZ’. ④동송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관객에게‘통일 국수’를 말아주는 유목연 작가. /사무소 제공·김미리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난 3년간은 철원의 DMZ 근처 안보관광 코스와 민통선 마을을 전시장으로 삼았다. 올해는 주민 곁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예술가 49명이 철원 내 DMZ 접경 지역 중에서 인구 1만8000명으로 가장 큰 동송읍으로 갔다. 동송은 DMZ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 정도 떨어져 있고, 해방과 함께 북한 지역에 속했다가 6·25전쟁 이후 남한 땅이 됐다. 기획에 참여한 김남시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동송이라는 마을의 역사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며 "이곳에 어린 시간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동송세월'이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말했다.

주로 군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카페, 여인숙, 시외터미널 같은 평범한 일상 공간에 예술이 스며들어 갔다. '더착한커피'라는 이름을 단 아담한 카페 앞엔 채송화 핀 작은 정원이 만들어졌다. 김이박 작가가 군인들이 주로 찾는 PC방, 모텔,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군화에 묻은 흙을 모아와 그 속에 숨은 씨앗을 키운 것이다. 동송전통시장 '성심약국'에선 정원연 작가가 약사 가운을 입고 청심환을 패러디한 '군심환(軍心丸)'이란 이름의 환약을 파는 퍼포먼스를 한다. '군인의 마음의 병을 깨끗이 씻어주는 묘약'이라는 재기발랄한 설명이 잇따른다. 동송시외버스터미널에선 유목연 작가가 '통일되는 날까지 오래오래 살고 통일되면 잔치 한 바탕 열자'며 '통일 국수'를 말아준다.

신종 사업으로 등장한 군인 대상 '휴대폰 보관소'도 전시장이 됐다. 휴대폰 보관소는 군인들이 개인 휴대전화를 맡겼다가 휴가 나와서 찾아갈 수 있도록 한 달 단위로 이용료를 내고 쓰는 일종의 사물함이다. 김진주 작가는 신세대 군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사물함 16개를 빌렸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레르크는 동송 농협 지하에 참호에서 나오면 PC방으로 연결되는 영상 작품 '헤드쿼터'를 전시했다. 한 달간 머물며 군인들을 관찰해보니 부대 안에선 따분해하다가 외출 나가 PC방에서 전쟁 게임을 할 때는 진짜 전쟁하듯 눈이 말똥말똥하더란다.

강현아 작가의 '동송DMZ생태관광' 전시장으로 변한 깻잎 밭을 물끄러미 보던 주민 오세근(52)씨가 말했다. "여기가 극장 하나 없어 의정부까지 나가야 할 정도로 문화 시설이 없어요. 이런 데까지 와서 예술 한다니 고맙죠.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알아먹기 쉬운 거 해주면 안 될까." 내년엔 주민들 곁으로 더 가까이 가겠다고 주최 측은 다짐했다. 29일부터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관련 전시가 이어진다. (02)739-7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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