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의 평화 집착과 軍 기강 해이, 보고 체계 마비와 從北의 준동
꿰뚫어 보고 北이 도발하는데 시기 부적절한 對話 제의까지
'혹독한 대가' 운운 對北 방송 '존엄' 언급할 배포는 있을까

김대중 고문[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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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우리 군인 2명의 다리가 잘린 것뿐 세상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지나고 있다. 북(北)은 도발하고, 우리는 '혹독한 대가' 운운하다가 생뚱맞게 대화하자고 손 내밀고, 북은 그것을 걷어차며 한·미 훈련에 '무차별적인 타격'을 경고한다. 북은 핵을 앞세워 한국 괴멸을 공공연하게 떠드는데 우리는 신뢰 운운하며 '평화통일' 하잔다.

북한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DMZ(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무려 504회나 무력 도발과 납치·습격을 벌였다(국방백서). NLL 등 기타 국지 도발을 합하면 1100여건이나 되고 간첩 등 침투도 2000건에 가깝다. DMZ 도발에서 우리 측(미군 포함) 사망자는 30명, 부상자는 44명이나 된다. 천안함·연평도 등 해상 도발로도 50명 넘게 전사했다. 그런데 자료에 의하면 DMZ에서 확인된 북측 사망자는 불과 4명이며 1973년 백골부대의 포격 때도 '북 GP 다수 피해'가 전부다. 숫자로 봐도 북은 우리 병사를 많이 죽였고, 우리는 아무 보복 대응도 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지뢰 도발은 그 연장에 불과하다. 북한 입장에서 한국은 '종이'도 아니고 '호랑이'는 더더욱 아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우리를 깔보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우리를 건드릴 태세가 안 돼 있다'는 태도다. 저들은 한국 정부가 평화 신드롬에 빠져 대화에 매달리고, 전쟁 공포증 때문에 유화에만 신경 쓴다는 것을 안다. 우리 군인이 적의 지뢰로 다쳐도 국방 책임자가 군 통수권자에게 제대로 직보(直報)도 할 수 없는 체제인 것도 안다. 반(反)정부 분자들의 역공이 무서워 지뢰 하나 확인하는 데 5일씩이나 걸리는 것도 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부는 뚱딴지같이 남북 대화나 제의하고, 대통령은 '드림존'을 거론하고 이산가족 상봉 얘기를 꺼내며 '평화통일'에 매진한다. 야당은 차제에 5·24 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뢰 공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민 불안에 편승해 대북 유화로 나가자는 야당의 순발력(?)은 어쩌면 북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수확'인지도 모른다.

저들은 우리 군대가 '직장인'에 불과하고 일부는 나랏돈 빼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 군대라고 알고 있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군(軍)의 기강 해이를 거론하는 것을 자해 행위인 양 비판하는 일부 여론이 결과적으로 우리 군을 병약하게 만들고 군을 과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해왔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군에는 진정한 '군인'이 없고, 더 나아가 '영웅'이 없다는 것도 안다.

북측은 민간 차원에서도 종북 세력들이 당국의 지뢰나 어뢰 확인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시간을 벌어주고 우리 적개심의 예봉을 무디게 해주는 등 지원 작전을 병행하는 것을 안다. 또 일부 리버럴 지식인 사회나 좌파 인사들이 대화 우선론을 들고나와 우리가 유연성을 보이고 북한 정권을 재정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도 안다. 이들은 걸핏하면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우리가 참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대북 우월론을 제기하고 있다. 대북 유화와 대화를 주장해야 지식인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인 양 위선의 분위기가 남쪽에 만연하다는 것을 저들은 안다. DMZ 일대 녹음 침투를 막기 위해 화공(火攻) 작전을 쓰겠다면 환경론자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대북 전단을 날리려고 하자 지역 주민을 앞세운 친북 세력들이 나서서 막아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좌파 세력이 죽기 살기로 막고 도지사까지 엇박자를 놓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북한은 흐뭇하다 못해 스스로 놀랄 것이고 한국이 불쌍해보일 것이다.

이쯤 되면 김정은 세력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한국을 업신여기고 남을 것이다. 남쪽 정부는 스스로 알아서 뒤로 빠지고 좌파 세력은 강력한 지원 세력이 돼서 사사건건 정부의 뒤통수를 갈겨대니 한국을 도발하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로 여길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방향을 잃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적어도 대북(對北) 면에서 국민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동어(同語)반복으로 들릴 뿐이다. 이 시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고 대화와 신뢰를 거론하며 진정성을 촉구하고 정상회담을 꺼내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모든 사안에는 그 '때'가 있는 법이다. 평화통일을 말할 때가 있고 대화를 말할 때도 있듯이 응징할 때도 있어야 한다. 그것을 뒤섞어버리면 우리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적이 우리 군인을 죽이는 대목에서 거기다 대고 '말로 하자'고 하는 것은 위선이고 비굴이고 약세다.

그나마도 대북 스피커 방송의 재개가 우리가 취한 유일한 대응이라는 현실이 우리를 너무나 왜소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모처럼 재개한 스피커 방송이 노래나 틀고 뉴스나 읽어대는 데 그치지 않고 저들이 제일 민감해하는 북의 '존엄'을 언급하는 데까지 나아갈 배포가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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