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비무장지대(DMZ)에서 1970년대 후반 군 복무를 했다. 소대가 GP를 석 달 지키다 철책선 밖으로 나와 석 달 훈련하고 다시 투입됐다. GP(Guard Post· 소초)는 DMZ에 뜬 섬이다. 군사분계선에서 철책선까지 남북 2㎞씩 탁 트였다. 분계선에도 아무 장애물이 없다. 북한군이 언제든 맘만 먹으면 넘어온다. GP에선 망원경으로 북측 움직임을 살펴 보고했다. '상청하백 셋이 밭을 갈고 있음' 식이다. '상청하백(上靑下白)'은 파란 윗도리에 흰 바지 입은 북한군 사병을 가리켰다.

▶강원도는 산악지대여서 고지에 철조망 울타리를 두르고 GP를 차렸다. 고지 아래 약수터처럼 모아둔 물을 길어 썼다. 둘이 무장하고 내려가 '스페어 깡(기름통)'에 물 채워 도르래 줄에 걸었다. GP에서 넷이 연자방아 돌리듯 끌어올렸다. 둘만 내려와 있는 게 께름칙해도 실컷 씻고 빨래할 수 있어 물 당번을 다퉜다. GOP(General Outpost·일반 전초)가 지키는 남쪽 철책선 통문(通門)은 보급품 들어올 때나 열렸다.

 
 

▶병사들은 여름 GP에 투입되는 걸 싫어했다. 주변에 무성한 수풀을 없애야 했다. 관측·경계 시야를 확보하는 '사계(射界) 청소'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 흙이 드러나도록 야전삽으로 까 내려갔다. 몇 주씩 하는 작업도 힘들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지뢰가 겁났다. 그러다 GP에서 전역했다. 떠나고 떠나보내며 소대가 눈물바다가 됐다. 통문까지 걸어가며 까닭 모를 눈물이 흘렀다.

▶DMZ에 '추진 철책'이 등장한 것은 80년대 중반이다. 경계 공백을 메우려고 GP와 GP 사이에 드문드문 세운 철책이다. 북한이 먼저 만들어 뒤따라 대응했다고 한다. 북한이 지뢰를 묻은 곳은 추진 철책에 난 소(小)통문이다. 사단 수색대가 열흘에 한 번쯤 DMZ 수색작전을 하며 드나든다. 이번 도발에 당한 것도 수색대원이다. 일부에선 군의 경계 소홀부터 탓하고 나섰다. 추진 철책을 철책선과 혼동한 것 아닌가 싶다.

▶추진 철책은 철책선처럼 죽 연결된 게 아니고 없는 곳도 많다. 병력이 경계 근무를 서지도 않는다. GP·GOP에 야간 열상(熱像) 감지 장비가 있지만 열로 탐지하느라 안개와 비에 가린다. 감시 레이더가 안개를 투과해도 굴곡 지형에선 사각(死角)이 생긴다. 숲에 불을 놓았던 사계 청소를 2001년 중단해 수목도 많이 우거졌다. 북한이 지뢰 매설을 '남측 자작극'이라고 선전하자 덩달아 인터넷 괴담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는 둥 찧고 까분다. 한심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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