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김정은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초청해 놓고도 이 여사가 3박4일간의 북한 일정을 마칠 때까지 결국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이 여사 일행은 8일 김포공항으로 돌아와 "편안하고 뜻있는 여정을 마쳤다"고 했으나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30대 초반인 김정은이 93세 고령의 이 여사를 먼 길로 초청해놓고 만나주지도 않은 것은 예의범절을 거론하기 앞서 인간사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다. 그는 기행을 일삼는 미국 은퇴 농구 선수는 초청해 만나며 환대했었다. 이번엔 대남 관련 부서 책임자인 김양건조차 이 여사를 방문하지 않았다.

북의 모든 대남(對南) 행동은 전술 전략에 따른 것으로 그들의 행태를 선의(善意)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북의 이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김이 누구를 만나든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의 이런 식의 행태는 그들의 전술 전략에도 유리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고밖에 할 수 없다. 도를 넘은 공포 통치에 이은 이런 무례를 보면서 김의 사고방식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지난주 연이어 발표된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 아세안+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은 이례적으로 북한의 국호(DPRK)를 명시하고 유엔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북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우려했으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특히 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회의엔 우리 측이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북은 모든 안보리 결의와 9·19 공동성명상의 공약을 완전히 준수하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장은 이 성명들이 나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세안 지역 포럼' 일정 동안 14개의 양자 회담을 소화했지만 북한 외무상은 만나지 않았다. 고립은 깊어지는데 통치권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사되고 있는 게 북의 지금 실정이다. 북은 오는 10월 장거리 로켓 발사 등 전략적 수준의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누가 뭐라든 제 맘대로, 내키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행동 양식과 최종 목표에 대한 감시·대응에 조금도 허점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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