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베이징주재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25 명의 처리를 놓고 북한과의 유대관계와 국제사회의 기대 충족이라는 두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베이징 소재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의 북한문제 전문가인 첸 유지에 연구원은 이번 사건이 '남북한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지만 또한 중국과 북한 사이에 관계에도 매우 민감한 사안'라고 평가했다.

첸 연구원은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1960년대부터 탈북자 송환에 관한 합의가 존재하며 중국으로서는 이 합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사람들은 단지 더 나은 생활을 원하는 보통사람들이며 아무런 정치적 동기를 품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묘수를 고안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첸 연구원은 지적했다.

지난해 6월에도 탈북자 일가족인 장길수군 가족 7명이 베이징 소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실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 중국 당국을 곤혹스럽게 한 적이 있다.

당시 길수네 가족은 싱가포르를 경유, 한국으로 가는 것으로 문제가 일단락됐다.

중국 정부는 북한과 맞닿은 1천300㎞에 이르는 국경선을 뚫고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주민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정치적 탄압을 피해 북한을 탈출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상황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이 난민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이론상 스페인측에 대해 탈북자 25명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폭압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인 북한으로 이들을 추방할 경우 이들이 고문과 처형 등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반발 초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중국의 간과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중국은 북한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으며 지난해 9월 장쩌민(江澤民)주석은 평양을 방문, 열렬한 환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인권탄압에 공모자라는 비난을 받기 보다는 북한 문제에 관한 성실한 중재자로서 국제사회에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대화 제의를 북한측에 전달해줄 것을 중국측에 요청한 바 있으며 이는 중국-북한의 긴밀한 관계를 부시 대통령 인정한 것이다.

중국이 걱정하는 또 다른 문제는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망명 요구를 수용할 경우 현재 중국내에 흩어져 있는 20만-30만명의 탈북자들로부터 유사한 망명 요구가 쇄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길수네 가족의 망명사건 이후 한때 중국은 유사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탈북자들을 즉각 북한으로 송환하는 조치를 취해왔으며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에서는 중국 정부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일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탈북자들을 묵인하는 등 전반적으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중국내 접경지역의 마을에서도 탈북자들에게 은신처와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이들을 돕는 것이 보통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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