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내걸며 인권 외면하고 '고립' 외치면서
지원 끊은 대북정책들 北 변화 못 시켜
실종된 北과 대화 물꼬 트고 핵 포기,
경제·개방 선택하게 유인하는 복합적 정책 내놔야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역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념 스펙트럼의 어느 한편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래서 너무 뜨겁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차가웠다. 진보 정권이 '퍼주기'를 했다면 보수 정권은 '안 주기'를 선택한 셈이다.

실제 대북정책에서도 그랬다. 진보 정권은 '포용(engage)'을 내걸었다. 우리의 선의(善意)를 북한이 끝내 외면하지는 못하리라고 믿었다. 막대한 양의 선물을 받다 보면 북한이 언젠가는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순진한 기대였지만 그런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포용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잔혹한 인권 탄압이 알려져도 애써 무관심했다. 오늘의 대북정책만 있었지 내일을 위한 통일정책은 없었다.

보수 정권은 '고립(enclave)'을 주장했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대규모 경제협력은 물론 민간의 조그마한 생계형 사업도 금지시켰다. 심지어 북녘의 아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조차 최소화했다. 그렇게 압박하다 보면 북한이 붕괴하거나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순진한 기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언제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르는 통일정책만 무성했고 당장의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북정책은 사라졌다.

이 같은 대북정책은 양자 모두 '집토끼'만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 진영의 목소리는 '꼴통'으로 치부하거나 '좌빨'로 낙인찍어 버렸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면서 정작 내부적으로는 "우리는 다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어느 정권이나 공약 차원에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적 분열대'를 조장했던 것이다. 모든 정권의 목표였던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실패했다.

이제 대북정책은 '유혹(entice)'으로 가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경제·핵 병진노선이 핵 중심의 정책이라고 해석한다면 경제의 비중을 점차 높이는 방향으로 북한이 진화하도록 유혹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에 '올바른 선택'을 말로만 요구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 '전략적 인내'가 다른 나라에는 정책일 수 있지만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무책임일 뿐이다.

아직은 핵을 버리지 못하는 북한을 튼튼한 안보로 제어하면서도 경협(經協)의 진전으로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인해야만 통일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 일방적인 포용이나 단선적인 고립 정책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고 이제는 복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퍼주기'와 '안 주기'가 지난 시절의 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잘 주기'로 가야 한다. 성장을 토대로 복지를 확충해 나가는 '따뜻한 보수'의 손길이 안보를 기초로 하면서도 지원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가는 대북정책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대북정책이 자연스레 통일정책으로 연결된다.

이미 우리의 여론도 그렇다. 2014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남북경협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KBS 국민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5·24 조치의 유지에 찬성하는 비율은 전체 국민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의 2015년 2분기 통일여론조사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대북·통일정책에 대해 '남북대화 재개'가 39.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통일 미래상 제시 등 통일 준비'는 26.4%로 다섯 번째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론 민의를 수렴한다는 국회조차 남북대화마저 없는 '대북정책의 실종 사태'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고만 있을 것인가. 분단 70년의 무게가 아직 가벼운가.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