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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용은 사양… 北 주민의 실제 삶을 담았어요"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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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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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북한 사진 34점 전시한 분쟁지역 사진작가 英 댄지거]

재작년 여름 3주간 북 전역 여행… 의외로 검열 없이 전부 가져와
모든 것이 차단된 세상이지만 공동체적 가치 남아 흥미로워

   
▲ 닉 댄지거 /김지호 기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얼마 전 북한을 다룬 프랑스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북한 당국이 저한테 촬영을 제안한 집이 나오더군요. '선전용 집'이었던 거죠. 저는 진짜 북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싶었어요."

영국 출신 사진가 닉 댄지거(Danziger ·57)가 지난해 찍은 황해도 사리원 미곡의 한 가정집 사진 앞에 섰다. 북측이 제안한 평양 부유층 가정을 뿌리치고 그가 어렵사리 접촉한 평범한 가정이다. 퇴역 농부인 주인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공부부터 시켰다. "애들이 하도 진지해서 무슨 내용인지 통역한테 물어봤어요. 수학 숙제인데 '총알이 몇 개 있는가' '미제'와 '일제'가 몇 명인지 가위표 하며 세어 봐라는 내용이라더군요(웃음)."

댄지거는 25년간 아프가니스탄·보스니아 등 분쟁 지역을 사진에 담아왔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땐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를 30일간 밀착 취재해 담았다. 그때 찍은 사진으로 2004년 세계보도사진전 인물 사진 부문 대상을 탔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의 렌즈가 이번에 향한 곳은 북한이다. 재작년 8월 영국문화원과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의 도움으로 3주간 평양·남포·원산·사리원 등을 여행했다. 그 사진을 모아 '38선 너머(Above the Line)'라는 전시를 올해 런던과 홍콩에서 열었다. 그중 34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1일부터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전 '북한 프로젝트'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그에게 물었다. 왜 북한이었냐고. "폐쇄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표출할 자유를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요. 사진은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제가 줄 수 있는 작은 도구입니다. 북한이 그런 나라인 거죠. 제겐 총리나 여왕을 찍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입니다." 1950~60년대에 멈춘 듯한 평양 이발소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아줌마들, 해변에서 고기 구워 먹는 피서객이 렌즈에 담겼다. 검열은 없었을까.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여달라 하지 않더군요. 단 김일성·김정일 동상 사진을 목만 댕강 나오게 편집하지는 말라고 했어요."

   
▲ (왼쪽부터)평양 이발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 견본용 남성 헤어스타일 그림이 벽에 붙어 있다. 황해도 사리원의 가정에서 할아버지가 손주들의 숙제를 돌봐주고 있다. 가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평양 미장원에서 파마하는 여인들. 우리의 1960~70년대 풍경과 비슷하다. /Nick Danziger·*NB Pictures for the British Council 제공[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5년 전 뉴질랜드에서 캄보디아로 가면서 환승하는 길에 서울서 24시간 머문 적이 있다. "단 하루 서울을 구경했을 뿐인데 북한에 갔더니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서울은 세계화의 용광로 안에 있지만 북한은 모든 게 차단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엔 서양에선 잃어버린 공동체적 가치가 있었어요."

런던과 홍콩 전시에 가장 관심을 보인 건 한국 사람들이었다. "한국 관람객들이 제겐 생경한 장면들을 보며 '와 우리랑 정말 비슷해'라고 하더군요. 간혹 우는 관객도 있고요. 남북한은 마치 예전에 이혼한 부부 같아요. 이젠 시간도 흘러서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빨리 화해하고 재결합했으면 합니다." 그는 "UN 후원으로 키프로스 내전 때 행방불명된 이들의 시신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6.25 때 행방불명된 이들을 찾는 작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9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면서 카불에 보육원을 세웠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 보육원이 문 닫게 되자 마지막 남은 여자아이 둘과 남자아이 하나를 입양했다. 당시 미혼이었던 그에게 영국법은 입양을 허가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모나코로 이주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서른 언저리다. "저는 '위험'을 찍으러 가는 게 아니라 그곳 '사람'을 찍으러 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지구상 어딘가엔 굶주림에 지친 이들, 내일이 없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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