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중국 무장경찰이 베이징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으로 진입하려는 탈북자를 제지하고 있다. /AP

“북한으로 끌려간 뒤 수개월간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자유와 식량을 얻기 위해 다시 탈북했다.”
14일 오전 11시 중국 베이징(北京) 소재 주중 스페인 대사관 건물로 진입한 탈북자 25명은 6가족과 개인 3명(고아 소녀 2명 포함)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과거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강제송환된 적이 있는 재탈북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망명을 도운 일본 인권단체 ‘북조선 난민지원기금’과 국내외 인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가족 단위로 재탈북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재탈북한 뒤에는 베이징과 연길(延吉) 등에 흩어져 조선족 등의 도움을 받고 살았지만, 지난달 초부터 ‘북조선 난민지원기금’과 국내외 인사 5명에 의해 하나 둘 중국 모처로 집결해 망명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독일대사관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보안 때문에 1주일 전 포기했다고 한다.

부인(40)·딸(10)과 함께 탈북한 광부 이성(43)씨는 세 번의 탈북과 두 번의 강제송환 끝에 망명에 성공하는 집념을 보였다. 97년 7월 가족과 탈북했던 이씨는 20일 만에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강제송환돼 한 달 동안 온성교도소에 수감됐다. 석방된 이씨는 그해 10월 재탈북했지만 곧 다시 강제송환됐으며, 마침내 99년 8월 세 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이씨는 “교도소에선 나무에 매달린 채 매를 맞는 등 짐승 같은 생활을 했다”며 “두 번째 적발됐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먹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중국 공안당국의 수술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번에도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에 대비해 몸속에 자살을 위한 극약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일(49)씨 가족 5명은 지난 97년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송환됐으며, 수개월간 감금됐었다. 이씨는 이날 발표한 개인 성명에서 “한국에서 자유롭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싶다”며 “한국에 가게 되면 장남(19)은 선교사, 딸(14)은 피아니스트, 차남(16)은 축구선수를 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탈북 전 거주지는 온성·회령·명천·문산·손봉·함흥·삼봉 등으로 함경북도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노동자·광부·점원·학생에서부터 치과의사·시공무원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총 25명 중 남자가 13명, 여자가 12명이다. 연령으로 보면 20세 미만이 11명. 이성(43·노동자)씨의 딸 진화양이 열살로 가장 어리고, 전직 노동당원이었던 최병섭씨가 52세로 최연장자다. 김향·이선애 등 두 명은 16세 고아 소녀들로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북한의 가족 친지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성명서 등에 대부분 가명을 사용했다. 또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사진촬영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 北京=呂始東기자 sdyeo@chosun.com
/서울=金鳳基기자 knigh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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