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스페인 대사관 진입 직후 대사관 남쪽 둥즈먼와이다제(東直門外大街)와 대사관 정문을 지나는 싼리툰루(三理屯路)에는 녹색 정복의 인민해방군 소속 무장 경찰들이 기자들을 포함, 외부인의 접근을 전면 차단했다. 대사관 진입로는 대사관으로부터 약 50m 떨어진 곳에 통제 끈이 둘러쳐졌으며 무장 경찰들이 밤새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저녁 7시10분(한국 시각 8시 10분)쯤 경찰 차량의 안내로 45인승 대형 버스가 대사관 쪽으로 접근, 대사관 정문 바로 옆에 주차함으로써 탈북자들의 이송이 임박했다는 관측을 낳았다. 차량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으며 간간이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량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사진 기자들은 이날 아침부터 통제선 밖에 카메라를 설치한 채 현장을 지켰으며, 저녁 시간이 되자 빵 등 간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 탈북자들 “우린 속았습니다” =스페인 대사관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보도진 등 외부의 일반 전화는 받지 않은 채 중국 정부 및 한국 대사관 등과 긴밀히 연락하며 탈북자들 처리문제를 협의했다. 오후부터는 스페인 대사관 차량과 소속을 알 수 없는 외부 차량들의 대사관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탈북자 25명이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이후의 상황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 CNN 방송이 줌 카메라와 지향성 마이크로 잡은 대사관 건물 안에서의 이들의 말 가운데는 북한에서는 그곳이 낙원인줄 알았는데 나와보니 북한이 너무 못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설명과 함께 “우린 속았습니다”라고 하는 대목도 들어있었다.

이날 오후 늦게 스페인 대사관 직원인 크리스티나 페레즈 구티에레스는 “탈북자들은 난민 지위를 얻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모두 건강해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또 스페인 대사관측이 중국 당국 및 베이징의 유엔난민담당관실(UNHCR)과 회담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 대사관의 다른 한 관리는 탈북자들에게 물과 음식이 제공됐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은 대사관 안에서 난민자격신청서와 한국으로의 망명신청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작년 6월 장길수군 가족 7명이 베이징의 UNHCR에 진입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스페인 대사관 관계자와 일일이 인터뷰를 한 뒤 대사관 내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행인들도 관심 =행인들도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여기저기서 무리를 지어 큰 호기심을 나타냈다. 행인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모른 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비자 발급 때문에 문제가 생겼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한 중국인은 자신이 스페인 대사관에 근무하는데도 들어갈 수가 없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진입 상황을 취재한 한 서방(西方) 기자는 “오늘 아침 일찍 탈북자 관련 단체로부터 팩스로 연락을 받았다”며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지원단체들이 국제적으로 공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의 한 기자는 “장길수군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 北京=呂始東특파원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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