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차원에서 통일 준비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통일나눔펀드' 출범식이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펀드 모금과 운용을 맡게 될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안병훈 이사장은 이날 "남북이 이대로 가면 독일·오스트리아처럼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될 것"이라며 "분단 100년이 되기 전에 남북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매달 한 가정이 1만원씩 통일 기부금을 내는 약정서에 서명했다.

통일과 나눔 재단은 통일 문제 원로와 전문가가 모여서 "좌우와 보수·진보를 초월한 민간 통일 운동의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지난달 설립됐다. 실제 이날 여야, 좌우, 기업·시민단체 인사들이 출범식에 참석해 1만원 통일 기부를 약정했다. 통일나눔펀드는 앞으로 민간 통일 단체와 탈북자 등을 지원한다.

통일나눔펀드는 사실상 첫 민간 주도형 통일 기금 마련 운동이다. 지금껏 정부가 주도한 통일 기금 조성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 찬밥 신세였다.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통일 항아리'가 이 정부 출범 후 사라져 버린 게 대표적인 예다. 정부 주도 방식은 일반 국민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단명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통일나눔펀드는 광범위한 국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 그 첫 발걸음이 '매달 1만원 통일 기부 약정'이다. 단지 금전적 기여의 문제가 아니다. '매달 1만원 기부'의 진정한 목표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통일에 대한 부정적·냉소적 인식을 씻어내자는 것이다. '한 달 1만원'이면 사람에 따라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는 돈이다. 그러나 여기에 참여해 약정하는 순간 더 이상 통일이 자신과는 무관한 남의 일, 아주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일일 수 없다. 바로 나의 일이고 언제든 벼락처럼 닥쳐올 수 있는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국민 수십만명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등지의 난민(難民)과 아동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보다 더 심각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과 영·유아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막혀 있다. 지난 5년간 우리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우리나라 해외 무상 원조(3조3723억원)의 1.68%밖에 되지 않는 566억원에 그쳤다.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북한 정권은 외부의 지원을 악용해 왔다. 지금 국제사회와 우리의 대북 지원이 사실상 중단된 것도 2010년 3월 북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 때문이다. 북의 핵·미사일 개발 비용을 모두 합하면 북 주민들에게 2년 6개월간 옥수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2013년 한 해에만 보석·향수 등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6억4000여만달러를 퍼부었다.

이런 북한을 돕겠다고 나설 나라는 많지 않다. 지난해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 지원액은 2001년의 10분의 1 수준인 264억원에 머물렀다. 우리의 대북 지원·사업 역시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북 지원 등에 쓰기 위해 매년 책정해 온 남북협력기금은 5년째 거의 쓰지도 못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많은 분이 또 북한에 '퍼주기' 하자는 거냐는 생각을 하실 걸로 안다"며 "나라를 죽이는 통일 운동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며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통일 운동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금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은 끊겨 있지만 많은 민간단체가 북한 주민들에게 닿는 끈을 어렵게 지켜오고 있다. 통일나눔펀드는 이들을 도울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겐 '남녘에 우리를 도우려는 동포들이 있다'는 희망의 빛이 필요하다. 영양 결핍의 영·유아들, 남한 학생보다 키가 15㎝나 작다는 청소년들, 열악한 환경 속의 임산부들이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 동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이 알게 되는 것은 장차 그 어떤 통일 방안이나 대북 정책보다 더 큰 울림과 파장을 낳을 것이다.

탈북자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먼저 온 통일'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먼저 온 통일'을 이렇게 홀대하고 방치하면서 '다음에 올 진짜 통일'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다. 3만명 가까운 국내 거주 탈북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취업난과 차별이다. 최근 탈북자 대상 설문 조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려고 해도 탈북자라면 무조건 퇴짜부터 놓는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한 조사에선 탈북자의 20.5%가 '지난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통일나눔펀드는 이 불행한 현실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도울 것이다.

그간 통일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예산과 해법에만 의존해 왔다.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것은 민간이란 한쪽 수레바퀴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통일나눔펀드가 빠진 바퀴를 온전히 끼우고 수레를 앞으로 밀려 한다. '우리가 나누면 민족이 합쳐질 것'이란 소망으로 '1만원의 나눔'이 거대하고 도도한 물결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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