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러 난민 가운데 중국 내 탈북자만큼 처절한 상황에 빠져있는 경우는 다시 없다. 앞길은 중국공안이 막고, 뒤에선 북한당국이 쫓고 있다. 탈북자 25명의 중국주재 스페인 대사관 진입사건은 한국과 국제사회가 중국 내 탈북자 문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6월 장길수 가족 7명의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농성사건 이후 탈북자들의 처지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당국의 단속과 강제송환 강화로 더욱 궁지에 몰렸다. 이번 25명의 행동은 생존의 벼랑 끝에서 선택한 최후의 자구책인 것이다.

이번 사건처리의 중심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나 국내법을 내세워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들을 불법입국자로 간주해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반(反)인권적 처사일 뿐 아니라,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탈북자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편의 당사국이 된 스페인은 유럽연합(EU) 의장국으로서, EU가 대북관계 개선과정에서 밝힌 북한 인권개선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차원에서라도 25명 전원을 희망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UNHCR를 비롯한 국제인권기구와 단체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정부의 의지와 능력이다. 탈북자들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헌법과 국적법의 정신이자 사법부의 판례다. 정부는 이들의 한국행을 실현하는 데 외교역량을 집결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결책으로는 장길수 가족의 경우처럼 중국이 25명을 제3국으로 추방하게 한 뒤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약을 가슴에 품고 마지막 비상구로 뛰어든 동포들의 절박한 호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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