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 8명 합격." 올 2월 천주교 평양교구는 이런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평양교구'라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광복 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북한 전역에선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이 추방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이라니?

1970년 평양교구 소속 사제와 신학생들은 모두 서울대교구로 적(籍)을 옮겼고,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게 됐다. 그러다 2009년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이던 시절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 양성을 재개했다. 물론 북한 지역에서 선발한 신학생은 아니고 서울대교구 출신 신학생이 '소속'을 평양교구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들이 벌써 26명에 이르고, 지난 2월엔 처음으로 부제(副祭)도 탄생했다.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들은 사제품을 받은 후 일단 서울대교구에서 활동하게 되지만 통일이 되면 평양교구로 달려가게 된다.

올해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종교계의 통일 준비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6월 1일자 담화문에서 "이스라엘이 70년의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은총의 새 시대를 맞이하였듯이 올해 2015년이 분단과 갈등의 7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를 여는 해가 되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천주교는 또 연말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하며 매일 미사 전에 묵주기도를 올릴 것을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이영훈)도 교회별로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교회 재건을 위한 기금으로 예산 1% 적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영훈 목사는 "1% 적립 운동은 각 교회가 북한의 한 지역을 마음에 두고 기도하며 통일 이후 물질적·영적으로 그 지역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라고 설명한다. 서울 명성교회는 작년부터 매주 월요일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다. 세계적 어린이 양육 기구인 컴패션도 통일 이후에 대비해 북한의 취약 어린이들을 양육할 프로그램 마련에 나섰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모든 분야의 교류가 중단된 상태에서 종교계의 통일 준비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지만 종교계의 움직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정신적·영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시적 성과는 더디더라도 꾸준히 기도하겠다는 정신이다.

국어학자 이희승은 수필집 '딸깍발이'에 수록된 '낭패(狼狽)'란 글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에는 낭패(狼狽)란 짐승이 있다. 그런데 '낭'이란 짐승은 앞발 둘만 있고, '패'란 짐승은 뒷발만 둘이 있어서, 낭과 패는 둘이 꼭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말아야 비로소 훌륭한 한 놈 몫의 활동을 할 수 있다 한다. (…) 어쨌든 이 둘은 항상 붙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어쩌다 떨어지는 날이면 그야말로 낭패요, 큰일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태는 이 낭패와 같다."

70년 세월은 '낭'과 '패'가 떨어져 있다는 사실조차 둔감하게 여길 만큼 길었다. 또한 이제 통일이 된다면 그게 낭패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싹트게 됐다. 그래서 이 낭패의 상황을 극복하고 북한 주민을 영적으로 보듬으려는 종교계의 노력에 기대를 걸게 된다. 결국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이 맞닥뜨릴 정신적·영적 허기를 어떻게 달래고 채워주느냐에 진정한 통합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