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戰死者 이름 딴 고속함 배치… 海軍 2함대의 함장·정장 6人]

"누군가 NLL 지켜야 했기에 아픈 기억에도 軍에 남아"
"방산 비리에 흔들린 海軍… 그래도 신념만큼은 굳건"
작년 北 도발 선봉서 막아

 
제2연평해전 13주기(29일)를 10여일 앞둔 지난 16일 경기 평택의 해군2함대 사령부. 북한군의 공격으로 서해에 가라앉았던 참수리 357정 앞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6명의 함장과 정장이 모였다. 조천형함의 함장인 박태룡(38) 소령은 당시 부대 당직사관이었다. 그는 "우리 장병들의 끔찍한 피해 상황 보고가 속속 들어왔지만, 월드컵이 한창인 시점이라 누구 하나 관심 없어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당시 아픈 기억 때문에 전역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서해 NLL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군에 남았고, 당시 숨진 고 조천형 중사의 이름을 딴 조천형함의 지휘관이 됐다.

영주함 함장인 황종서(43) 중령은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있기 직전, 참수리 357정의 정장이었던 고 윤영하 소령과 커피를 함께 마셨다"고 했다. 그는 "1기수 후배인 윤 소령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며 "수년이 지나서야 현충원을 찾아 후배의 넋을 기릴 수 있었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침몰했던 ‘참수리 357정’이 복원된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6명의 현역 함장과 정장이 지난 16일 모였다. 왼쪽부터 제주함장 박노호 중령, 참수리 327정장 한영웅 대위, 조천형함장 박태룡 소령, 참수리 369정장 최아성 대위, 237편대장 김성필 소령, 영주함장 황종서 중령. 이들은 “산화한 여섯 용사가 함께하는 한 우리가 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제2연평해전 당시 침몰했던 ‘참수리 357정’이 복원된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6명의 현역 함장과 정장이 지난 16일 모였다. 왼쪽부터 제주함장 박노호 중령, 참수리 327정장 한영웅 대위, 조천형함장 박태룡 소령, 참수리 369정장 최아성 대위, 237편대장 김성필 소령, 영주함장 황종서 중령. 이들은 “산화한 여섯 용사가 함께하는 한 우리가 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참수리 369정 정장 최아성(31) 대위는 작년 10월 서해 NLL에서 북한군 함정과 교전을 펼쳤다. 그는 "적에게 날아가는 58발의 포탄을 숨죽이며 지켜봤다"며 "북한 함정을 몰아낸 뒤에도 변변한 취사장 없는 참수리정에서 쪽잠을 잤다"고 했다. 이들은 제2연평해전에서 선·후배·동료를 잃은 마음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간 서해 상에서 계속돼 온 북한의 도발에는 추호의 빈틈도 없이 맞서겠다는 결의가 가득했다.

제2연평해전 이후에도 북한은 여전히 NLL을 넘나들며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엔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 폭침당했다. 적(敵)의 해안포는 증강됐고, 우리 함정을 겨냥한 KN-01 등 신형미사일 실험도 진행 중이다.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까지 성공했다.

1999년 '제1연평해전' 승리의 공로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제주함 함장 박노호(42) 중령은 "10년 전엔 북 도발에 대비해 '1'을 준비했다면 지금은 '10'을 준비한다"고 했다. 참수리 327정 정장 한영웅(28) 대위는 "전투배치 훈련을 할 때 '스톱워치'로 시간을 잰다"며 "단 몇 초의 시간 안에 대원들의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출항할 때 '출동'이라 하지 않고 '출전'이라고 말한다"고도 했다.

6명의 함장과 정장이 2함대 사령부에 모였던 16일에도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왔다. 참수리정 편대(2척) 작전을 지휘하는 237편대장 김성필(37) 소령은 "해군은 항상 위기 속에 살고, 어쩌다 한 번 평온이 온다"면서 "해군으로서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군의 위기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도 비롯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박태룡 소령은 "국민이 사랑하지 않는 군은 어딜 나가도 이길 수 없다"며 "그런데 전체의 0.1%도 안 되는 몇 명이 방산 비리를 저지르는 바람에 국민들이 해군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해군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박노호 중령은 "혼자만의 위기는 다 극복할 수 있지만 방산 비리는 항상 북한에 우월하다는 우리 군의 장비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며 "대원들이 흔들리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그래도 해군은 우리 영해를 지키려는 신념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2함대에는 제2연평해전 6 용사가 부활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2연평해전 이후, 산화한 고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6명의 용사 이름을 딴 신형 유도탄 고속함을 만들어 2함대에 배치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중 조천형함은 작년 10월 NLL 북한의 도발을 선봉에서 막았다. "이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상, 우리가 적에게 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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